죽음을 마주하며 생각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정규직 전환이다 뭐다 해서 회사가 시끄럽다. 겉으론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해도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대상을 알 수 없는 오기와 증오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나 보다.
모처럼 휴가를 쓴 날 아침, 카톡이 왔다. 교회 친구이자 동생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메시지였다. 오랜 기간 투병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헤어짐의 날이 오늘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장례식장에서 저녁예배가 있다 하여 부랴부랴 준비해서 늦지 않게 도착했다. 예배는 평화로웠다. 상실에 대한 슬픔은 존재했지만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애통함은 없었다. 이 생의 만남이 끝이 아니라고 믿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사람, 참 착한 사람이었어요.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여러분, 더 많이 사랑하세요."
오늘 할머니네 강아지 바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늘이와 바다는 시츄 커플이었는데, 예쁜 시츄가 사자처럼 털을 수북하게 하고 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척 귀여워했던 강아지다. 수컷인 하늘이는 진작에 하늘나라로 갔고, 바다는 백내장으로 눈이 하얗게 멀어 하늘이가 없는 집을 쓸쓸하게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바다의 털을 깨끗하게 깎아준지 며칠 되지 않아 바다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단다. 죽은 바다를 발견한 할머니, 더 이상 나눌 음식이 없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순간 쓸쓸히 혼자 생을 마감한 바다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글을 읽었다.
https://www.pikicast.com/#!/menu=landing&content_id=608727
원래 감정에 호소하는 글을 잘 읽지 않으려 하는데, 이 글을 읽고 또 펑펑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글에서 나오는 의료진과 내가 너무 닮아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또 책임을 전가하는 그 태도가 참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의료진을 향해 비난의 손가락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향한 사랑으로 더 중요한 마지막 인사를 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울게 했다. 이 차갑고 각박한 세상에서 이성과 논리로 싸우는 것만이 나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럽다.
사랑에는 아주 큰 힘이 있어서 비논리로 논리를 이긴다. 감정으로 이성을 이긴다. 과학과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 내가 아등바등 두 주먹을 꽉 쥐고 아무리 살아봐도 사랑 앞에선 다시 무너지고 만다. 인간에 대한 사랑,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믿음을 가지고 싶다. 한번 오고 가는 것은 똑같은 인생인데 내 인생의 끝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누가 나와 함께 할까. 우리 같이 고민해보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서로 비방하는 손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모두 참 연약한 사람이구나 인정하고 안아준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