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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Apr 30. 2018

9. 나는 왜 너에게 화가 나는가

결혼준비중 아픈 남자친구에게 기어이 화를 내고야 말았다.  

어린왕자의 한 대목이다. 

 "가시는 무엇에 소용되는 거지?"

(...)

 "가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 꽃들이 공연히 심술부리는 거지."

 (...) 그러나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어린 왕자는 원망스럽다는 듯 나에게 이렇게 톡 쏘아붙였다.

 "그건 거짓말이야!꽃들은 연약해. 순진하고.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가시가 있으면 무서운 존재가 되는 줄로 믿는 거야......"



남자친구가 어제 밤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오후에 회를 잘못먹고 배가 아프다며 연락이 왔었는데 밤새 전화가 되지 않는다. 별일 없을꺼야, 약 먹고 쉬는걸거야, 라며 자신을 위로하다가 밤 늦게 잠이 들었다. 그나마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남자친구 전화기에 전화를 하며 내일은 괜찮아지겠지를 주문처럼 외우며 잠들었다. 


아침이 되니 문자가 왔다. 어제 밤새 아팠고 지금도 몸이 너무 아프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직병원을 먼저 알아봤다. 그리고 얼른 세수를 하고 옷을 주워입고 남자친구 기숙사 앞으로 찾아갔다. 남자친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간신이 걸어 나왔다. 남자친구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길이 백년 같았다. 가는 길에 마음이 급해져 몇번이고 사고가 날 뻔 했다. 열이 40도까지 나는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가니, 병원에서는 깜짝 놀란다. 놀란 마음에 눈물이 날것같은것을 억지로 꾹꾹 참았다. 이 정도가 될때까지 뭐했나 원망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여기서 울면 이 사람은 더 걱정할게 분명하니까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링겔을 맞으면서도 끙끙 앓는 남자친구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무서웠다. 뭐 큰 병이라도 걸린 것은 아닌가, 뭐가 문제였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겹쳤다. 링겔을 맞는 남자친구를 잠시 두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다녀오고, 죽집을 검색해 죽을 사왔다. 열이 높아 탈수현상이 있을 남자친구를 위해 이온음료도 사오고, 간호사분들꼐 드릴 커피도 몇 잔 함께 샀다. 시간이 벌써 11시가 다 되어간다. 다행이 링겔을 맞아가며 열이 서서히 떨어지며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한다. 머리를 쓸어주고 땀을 닦아주며 옆에서 기도했다. 사람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이 계기로 늘 정신없고 바빳던 남자친구의 삶이 정돈되고 쉬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남자친구에게 내가 혼자사는 아파트에 가서 조금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놓았고 아무도 가지 않을것이니 편하게 쉬고 있으라고. 그런데 남자친구는 굳이 자기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숙사는 방을 같이 쓰고 연구실과 붙어 있어 또 연구실로 출근할게 뻔한데, 그러지말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마음이 상했다. 본인은 하고싶은 대로 하며 살면 그만이지만 걱정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이제 나는 너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를 보냈다. 


오후가 되었는데 남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평소같았으면 하루종일 카톡 몇번만 보내도 아무렇지 않을 사이지만 괜시리 걱정이 된다. 몇시간이 몇년 같았다. 남자친구 기숙사는 연구실과 붙어 있어 경비가 삼엄하다. 그리고 몇동 몇호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찾아갈수는 없지 않는가. 몇분에도 한번씩 그냥 찾아가서 경비아저씨한테 생사여부 확인해달라고 말을 할까- 아니야 지금은 그냥 약먹고 약기운에 자고 있는 걸거야. 오락가락하며 오후를 그렇게 다 보냈다. 


"오빠 잤어" 

라는 단순한 카톡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자괴감이 든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 가있기를 원했던 것도 그 이유때문이 아니었는가. 열이 나는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내일 출근은 할 수 있을지를 살뜰하게 보살펴 주고 싶었다. 남자친구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내 아픈 마음도 회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본인이 불편하다는 나름의 이유를 대며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환자에게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아니면 남자친구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불같이 남자친구에게 화내는 쪽을 택했다. 너가 그렇게 혼자 하고싶은대로 독단적으로 살거면 평생 혼자살라고, 너의 독립심이 너에게는 득이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고통스럽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의 어제 저녁부터의 걱정과 뒤척거림, 오늘 아침에 받았던 놀랐던 마음을 스스로 참으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남자친구의 회복이 내 상한 마음의 회복인것을 몰라주는 그가 미웠다. 여전히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마음을 설명해줄 것을 부탁하는 남자친구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연약한 마음이 커질수록 그에게 내보이는 가시도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애를 포기해야하는 것임에. 

나의 순진하고 연약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앙칼진 가시가 올라오나보다. 바보같이 나는 이 가시도 그에 대한 사랑이라며 합리화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사랑은 이러한 가시까지 내려놀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괴감이 들고 내 마음이 쓰라려도 나의 선택보다 너의 선택이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이 찢겨나가고 아파도, 또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말이다. 


아- 사랑은 아직도 나에겐 멀고도 험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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