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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ul 20. 2018

13. 결혼 준비는 혼자만의 레이스

그러니 남과 비교할 것도, 질투할것도 없다!


이전 글에도 말했듯 예민보스인 나는 아주 조그마한 몸무게 변화에도 예민하고, 밤낮으로 드레스 사진, 결혼 준비, 후기 등을 읽으며 보냈다. 아니 밤낮으로는 조금 억지스러울 수 있으나, 나의 여가시간은 모두 습관처럼 결혼과 관련된 준비를 하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결혼 준비를 하는데 11월달에 친언니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결혼식은 9월인데 2개월을 남겨두고 결혼을 한다고? 남들이 들으면 그냥 그럴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부쩍 예민하고 까칠한 나에게는 여간 거슬리는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한 집에서 두 명이 같은 해에 결혼한다면 부모님께 갈 부담이 걱정이 되었고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효녀였다고), 나는 스스로 오랫동안 결혼을 준비해 차근차근 해서 가는데에 비해 주변에서 다 쌍수들고 환영하며 협조해주는 주변 분위기가 싫었다. 일종의 박탈감이라고 할까- 아니면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첫째 아들의 딜레마라고 할까.


성경의 나오는 이야기중에 탕자의 비유가 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흥청망청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 어차피 아버지 돌아가시면 저에게 재산을 주실 것이니, 그 재산 저에게 먼저 나눠주세요." 하고 재산을 상속해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는 둘째아들의 말을 들어주며 그 아들에게 할당된 재산을 먼저 준다. 둘째는 그 재산을 가지고 집 밖으로 나가 흥청망청 친구들과 먹고 즐긴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아들은 돈이 다 떨어졌고, 함께 놀던 친구들도 다 떠나간 것을 발견하다. 한 집의 돼지치기로 들어가 배를 굶주리며, 돼지 사료를 먹던 둘째는 문득 아버지의 집에 살던 종들도 이것보단 더 풍요로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둘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맨발로 달려나가 입을 맞추고 쓰다듬고, 새 옷과 반지를 끼워주며 "너는 내 아들이지 종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환영해준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등장인물인 첫째아들은 그 모습을 보며 못마땅하게 여긴다. 왜 아버지는 둘째를 그렇게 맞아주는 것이냐며 시기한다. 지금까지 친구들과 염소를 잡아서 먹게 하신적도 없으면서, 둘째한테는 왜 그렇게 너그러우시냐며 화를 낸다. 그러자 아버지는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고, 잃어버렸던 아들이 다시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냐고 아들에게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첫째아들과 똑같을까. 자신의 동생의 건강과 행복을 기뻐해주지 못했던 첫째아들의 모습에서 나는 나의 이기심을 직면한다. 왜 언니한테는 그렇게 등을 떠밀며 얼른 결혼하라는 주변의 분위기가 그토록 싫은 것일까. 그리고 나의 상대적인 박탈감에 공감해주지 않는 부모님에게 화가 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엄마아빠한테 토로해보앗자, 그리고 언니한테 화를 내보았자 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엄마한테 전화해서 솔직하게 다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대학원도 스스로 등록금을 내고, 엄마아빠한테 늘 경제적으로 폐 끼치지 않으려 했고, 뭐 사달라고 졸라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그냥 너무 화가나고 속상하다- 라고 말했다. 늘 바른 말을 하는 엄마는 나에게 너는 너무 이기적이라며 따끔하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축복하고 사랑해줘야지 그렇게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기적이지 않으려고 언니에게 결혼 날짜를 재차 물어가며 괜찮냐고 물어보고, 요란하게 결혼 준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상견례 때도 언니의 입장을 생각하며 조심조심했는데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깊은 낮잠을 잤다.


나는 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단순해서 잘 먹고, 잘 자고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한다. (예민보스 특징) 자고나서 일어나보니, 사실 이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내 마음을 바꿀수 있는 힘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의 무수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억울하고 속상한 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나중에 다 보상받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가. 사실 나의 이 심술궂은 마음이 정당화 될 수 있든 없든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조금이나마 억울한 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결혼준비는 누군가와 레이스처럼 비교하면서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결혼의 본질인 새로운 가정이 하나가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상기시키기로 했다.


내 결혼준비에 몰두하며 청첩장 문구를 고르다가 우연히 언니가 참 좋아하는 시인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읽게 되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왜 나는 언니가 그렇게 찾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 그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함께 즐거워해주지 못했을까? 언니의 사랑에 최대한의 축복과 응원을 해주지 못했을까? 나에게 나의 행복이 중요하듯, 언니에게도 본인의 행복이 중요한 것을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나의 결혼과 타인의 결혼을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것에서 최대한으로 감사하고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것은 눈을 돌리지도 마음을 주지도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한동안 미뤄놓았던 결혼준비를 하러 카페에 왔다. 청첩장을 고르고, 들어갈 문구를 고르고, 남자친구와 논의하는 이 시간이 참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내 옆에는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평소에 좋아하던 쿠키까지.

행복은 정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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