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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Aug 09. 2018

14.신부와 편견

신부는 신부기 때문에 아름다운거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교회에서 단기선교에 갈 일이 있어 태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교회에서 한 전도사님이 오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드레스나 턱시도 입는다고 다이어트하던데, 다이어트 안 하세요?"


처음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분이라면 이게 농담이겠거니 하고 받아쳤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이 분과 나는 그런 농담을 할 사이는 아니다. 또한 농담이었다 하더라도 이건 도가 지나친 질문이 아닌가? 정말로 그분의 의도가 무엇인가 궁금하여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본인의 질문이 다소 비상식적이었던 것을 깨달았는지 말을 얼버무리며 자리로 돌아가시더라. 그분의 그런 코멘트를 받고 한참 동안 힘들었었다. 내가 그렇게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외모 지적을 당할 만큼 못난 사람 었던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더 슬펐던 건,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런 사람의 한 마디 때문에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내 낮은 자존감이 참 못나보였다. 그 사람의 코멘트를 되짚어주며 그 사람의 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혹은 그런 말에도 툭툭 털고 웃으며 돌아설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난 그 둘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독 한국에서 외모와 몸매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한다. 처음에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 "살 빠졌다."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한참 어리둥절했었다. 가치중립적인 팩트 전달인지, 아니면 내가 그전에 살이 쪘었다는 욕인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살 빠졌다는 말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칭찬의 한 방법이더라.


결혼 준비를 하며 비슷한 뉘앙스가 섞인 코멘트를 많이 받는다. 결혼 전인데 살 안 빼느냐, 다이어트 잘 돼가고 있느냐. 참 다른 사람의 개인사에 관심도 많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참 쉽게 가볍게 외모에 대해서 여자들에게 무거운 족쇄를 채워버린다. 어쩌면 남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나의 잘못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신부'들이 강요받는 편견이 아닌가 싶다. 신부는 말라야 한다-는 명목 하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기하학적으로 살을 빼는가. 내가 아는 한 분은 결혼식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단다. 세상에. 누구보다 행복해야 하는 날에 다이어트 때문에 쓰러지는 건 그래도 너무 슬픈 거 아닌가? 신부는 결혼 준비를 하며 세상이 주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메시지에 대해서 가치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나의 소중한 날에 누구보다 아름답고 싶어 극강의 다이어트를 한다면 대 환영이다. 본인의 가치에 따른 판단하에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남들이 다 하니까' 혹은 '누군가 나에게 하라고 했으니까' 가 나의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잣대를 들이댄다. 내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 가치관의 홍수 속에 휘말리기 쉽다.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가 찾은 가장 나답게 되는 방법은 신앙이었다. 기독교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처럼 되려 애쓰지 않아도 나 자체로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선한 가능성을 믿어준다. 지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해지기 위해서다.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포함이다. 운동을 하며 세상에서 주는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살을 빼고 싶다는 이유도 다른 사람이 살을 빼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을 빼고 싶다는 나로 인한 동기였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도 나의 외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평가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평가와 내가 얼마큼 아름답게 느끼는지의 주관적 아름다움과는 무관하다.


결혼 준비를 하는 많은 신부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당신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도 아름다운 신부라고.

당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게 느끼는지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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