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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May 23. 2019

독일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혼자만 다니는 것의 매력이 있다. 친구랑 다니면 물론 여정을 즐겁게 보내겠지만,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혼자 걸어 다니고 혼자 차를 마시는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사람구경은 언제나 즐거우니까. 


한 달 동안 임시숙소에 지낼 때 혼자 집에 있기 좀이 쑤시고, 1주일치 끊어놓은 버스 티켓이 아까워 무작정 시내로 나가곤 했다. 물론 나가면 할 게 없어서 돈만 쓰고 들어오지만, 왠지 나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오늘도 무언갈 했다는 아이러니한 성취감이 들곤 했다. 오늘은 매일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첸 아저씨다. 내가 살던 곳 버스 정류장은 동네 안으로 버스가 굽이굽이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아저씨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서양 문화답게, 아저씨도 늘 구텐탁- 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아저씨는 외모는 분명 나 같은 동양인 외모인데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할머니들의 이름을 알아서 늘 이름으로 인사하곤 했다. 물론 내 독일어 레벨은 -2 니까 구텐탁 후에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바라보거나 괜히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매일매일 마주쳐서 정이 들어서일까? 하루는 아저씨가 나에게 먼저 질문을 했다. 

"니 쉬 중궈 마? " (사실 앞 단어는 못 알아들었지만 '중궈'는 알아들었다.) 

나는 영어로 

"아니요. 저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왜 독일에 왔는지, 온 지 얼마나 됐는지를 나는 영어로 아저씨는 독일어로 대답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아저씨가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 온 지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네. 거의 2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살았어." 

20년!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아이가 태어나서 무럭무럭 성장해서 독립하고도 남을 나이다. 중국의 천진에서 온 아저씨는, 남편이 일하는 연구소의 1대 소장님과 각별한 사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는 이 동네의 사정을 빤히 알고 터줏대감처럼 지내는 분이신 거다. 아저씨는 무슨 마음으로 이 곳에서 살고 있을까? 

그 후에도 아저씨를 몇 번이나 더 만났다.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버스에서 또 한 번 마주치기도 했다. 아저씨에게 남편을 소개해주었다. 우리가 시내로 이사를 오면서 아저씨를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아저씨에게 작은 한국 책갈피라도 주고 올걸-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나의 처음 독일 동네, 버스정류장 가는 길 



두 번째는 뚜띠이다. 뚜띠와의 인연도 버스에서 시작되는데, 어느 날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예쁘장한 동양인 여자가 탔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에 무심하게 신은 운동화, 어깨에 맨 책가방이 너무 예뻐 보였다. 한국 사람은 분명 아니고, 중국인 느낌도 아닌데. 저 여자는 어디서 왔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뚜띠를 다시 만났다. 내가 타는 버스는 125번인데, 124번이 쌩하고 지나가자 뚜띠가 놀란 눈으로 

"지금 저거 125번 아니지?"라고 물어봤다. 

나는 "응. 아니야"라고 말하며 "너 어디서 왔어?"라고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뚜띠는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인도네시아-독일 교포와 결혼을 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단다. 이 곳에 온지는 벌써 10년이 넘었고, 이 도시에서 출산을 해 아기까지 키우고 있는 아기 엄마였다. 그리고 시내에 있는 한 가게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단다. 정류장에서의 짧은 대화가 인연이 되어 우리는 커피도 마시고 같이 쇼핑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알고 보니 뚜띠는 한국 드라마 광팬이었다. 나보다 남자 연예인 이름을 더 많이 알고, 고전 드라마를 즐겨 보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 이름을 다 꿰고 있다. 혼자서 김치도 담가 먹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다음 달엔 같이 김치도 담가먹기로 했다. 한 주가 시작되면 뚜띠에게 문자를 보내곤 한다. 

"나 오늘 너네 가게 지나갔어. 잘 지내고 있지? 한주 파이팅!" 

별거 아니지만 참 감사한 인연이다. 


이상하게 나는 이 낯선 타지 땅에서 동양인들에게 관심이 많이 간다. 어쩌면 외국인으로서 겪는 외로움이 극에 치닫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어떤 경로로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독일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에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그들은 어떨까 들여다보고 싶다. 그리고 삶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희로애락을 더 알아가고 싶다. 우리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줄거리와 교훈이 있는 단편소설 같다. 첸 아저씨의 삶도, 뚜띠의 삶도 각자의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예술성이 있다. 다만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할 뿐. 그렇게 생각하면 단조로운 나의 일상도 괜히 기특한 생각이 든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어학원 숙제를 하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걸어 나가는 나의 일상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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