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내는 지역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역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나가도 프랑스에 다녀올 수 있다. 얼마 전에 프랑스 음식점에 가서 주문을 하다가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On prend (프랑스어: 주세요) un(프랑스어: 부정관사) wasser (독일어: 물) bitte (독일어: please)"
아니 한 문장에 언어가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내가 불어나 독어를 유창하게 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둘 다 정말 5살 어린이보다도 못한 수준이기 때문에 더 웃긴다. 이러한 비슷한 일은 독일어 수업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산책을 불어로 Promenade라고 하는데 혼자서 계속 프롬나드라고 말해서 망신을 당하거나, 나도 모르게 Ja(독어)가 아닌 Oui(불어)가 튀어나온다던가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재밌는 건 예전에는 독일어를 해야 하는 순간에 불어가 튀어나왔는데, 이제는 불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독일어가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언어체계는 참 재밌다. 마치 책장에 책이 어지럽게 꽂혀있는데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이 책, 저 책 뒤적뒤적하는 기분이다. 오래 공부해서 달달 외운 책은 무엇이 어디 있는지 빤히 알지만, 아직 끝까지 읽지 못한 책에서는 한 구절을 찾는 일에 버벅거리기도 하고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 어쩌면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도 한 책을 읽고 책장에 꽂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경이롭고 신기할 뿐이다.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언어화시키고, 그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가 거쳐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화를 이루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새삼 참 신비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곳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독일어를 배우며 하나하나 아는 단어가 늘어나고,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거나- 계산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경험하는 세계 또한 넓어지고 있다. 불어와 독어의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또 독일어가 잘 정리된 책이 되어 내 머릿속 책장에 꽂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