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코딩 교육 매니저의 회고_10편
주구장창 K-디지털트레이닝을 말했지만, 그 사업뿐만이 아니었다. IT 인재를 양성한다는 정부의 큰 목표는 여러 정책으로 흩어져 교육 매니저들의 업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곁에서 지켜보거나 실제로 참여한 사업만 5가지가 넘었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런 사업들을 접하며 떠오른 게 있었다. '이거 과열된 영어 교육 시장 같구나' 뭐, 다를 게 없었다. 영어 강의를 들으면 아이패드를 주는 대신, 코딩 강의를 들으면 맥북을 준다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장학금을 몇 백만 원씩 주는, 본질적으로 교육의 질과 관계없는 부가적인 혜택들이 주렁주렁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교육 자체가 나쁜걸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누군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게 어떻게 나쁘겠는가. 그리고 분명 이전까지는 비싸고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웠던 IT 분야의 교육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었다.
만약 이 교육이 나쁘다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국영수를 가르치는 입시도 나쁜 교육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난 입시 교육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교육을 시작한 이유와 맞지 않았다. 입시 교육도, 지금의 변한 코딩 교육도.
문과생에 코딩이 무엇인지 조차 제대로 몰랐던 내가 코딩 교육 매니저가 된 건 단 한 가지 이유였다. 입시, 자격증 등의 교육이 정해진 삶의 루트를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면, 그 당시의 코딩은 달랐다. 개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 계발을 위한 목적으로 관심을 가지거나 혹은 개발을 모르더라도 자신의 원래 삶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분야였다.
그래서 코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코딩 교육을 좋아했다. 순수한 배움의 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배워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분야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코딩 교육은 변했고, 업무에 임하는 내 열정도 점점 식어갔다.
업계에 변화가 왔으나 위에도 언급했듯 지금의 교육이 나쁜 교육은 아니다. 그저 내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문제인데, 마음을 고쳐먹으면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코딩 교육 시장은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스타트업에는 겨울이 찾아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딩 교육 회사들은 끊임없이 교육 매니저들을 채용하고 있지 않은가.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한다면 직무의 전망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적응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신념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여태껏 신념에 따라 살아왔는걸.
많은 문과생들이 경영학과를 희망할 때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보겠다며 소수의 러시아어학과에 입학했고, 남들이 어학연수를 1년만 다녀올 때도 전문성을 기르겠다며 2년 동안 힘들게 러시아에서 공부를 했다. 힘든 외국 생활을 끝마치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교육 업계를 고집했고, 대기업의 톱니바퀴가 되기 싫다며 혼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스타트업에 지원해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이제 와서 현실이 바뀌었으니 순응하고 회사에 다니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뒷일을 생각할 것 없이 회사에 퇴사를 선언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나는 변화가 빠른 IT 업계만큼이나 더 빠르게 변해버린 코딩 교육 시장에서 튕겨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