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졸업 뒤에 남은 건 오직 하나, 실패한 고백뿐

[2부 수관의 수줍음] episode 02

by 지은

2. 졸업 뒤에 남은 건 오직 하나, 실패한 고백뿐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야, 마치 미뤄둔 숙제를 내듯 강현에게 어설픈 고백을 했다. 그 고백의 결말에 대해 묻는다면, 아직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한 강현의 마음을 추측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무려 두 달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고백을 수십 번 씹고, 토해내듯 되뇌었다. 매일의 일과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것으로 시작했고, 언제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강현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현도 내 마음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기대가 내 속에 분명 잠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백하려던 건 결코 아니었다.


고백하던 날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마지막 전공 수업의 기말고사를 빠르게 끝마치고, 복도에 서서 강현을 기다렸다. 그날의 복도는 참 조용했다. 그 고요에 혼자 서서, 나는 같은 생각만 되풀이했다. 대학교, 전공, 학회가 끝나고 나면 우리 사이엔 무엇이 남을까? 오 년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있는 나에게 학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단 하나, 강현과 나의 앞으로의 관계였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나온 강현은 꽤나 후련해 보였다. 배낭을 한쪽에 메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강현은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 분명 강현은 나와 달리, 마지막까지 자신의 답안지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지에 흑심을 빼곡하게 남기며, 완벽한 에세이를 제출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팔 소매가 걷혀 있었다. 그는 소매를 내리지도 않은 채, 내 앞에 서서 물었다.

“세진아. 이제 졸업이네. 오늘부터 뭐 할 거야?”

나와 달리,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 하나 없어 보이는 그가 야속했다. 나는 볼멘소리로 답했다.

“글쎄. 달라지는 건 없겠지.”

하지만 강현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나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

강현의 말에 순식간에 조급한 마음이 나를 덮쳤다. 대학교가 졸업하면 많은 게 달라지다니, 그럼 우리의 관계도 사라지는 거야 강현? 불안과 의문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나는 스스로도 예상 못 한 고백을 내뱉었다.

“강현. 너...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잖아?”

마치 내 마음을 강현에게 맡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달라질 미래에 내 마음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는 어투로 말이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내 고백에 대한 답으로 강현의 흔들리는 말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 마음이 그런지 몰랐다던가,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보겠다거나, 당황스럽다, 미안하다 하는 말들 말이다. 그러나 강현은 언제나 그렇듯 내 예상을 비켜갔고, 그의 질문은 직선으로 내게 되돌아왔다.

“그래? 그럼 너는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하고 싶어?”

고백을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사람도 있었나?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잠깐의 정적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하얗게 얼어붙은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헤매었다. 아. 그러나 그 고요한 백야에는 어떤 반짝이는 것도 없었다.

“어... 그러니까...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사귀어 보고 싶어.”


어떤 말은 내뱉고 나서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깨닫게 될 때가 있다. 나는 사귄다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뒤에야, 순식간에 강현과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강현과 두 손을 맞잡고, 내 큰 등을 강현의 작은 손으로 쓸어내리고, 하루 종일 가로수 거리를 산책하며 나무의 삶 따위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모습을 그렸다. 너와 나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우리의 삶을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래. 나는 분명 강현과 만나보고 싶다.


그 순간을 회상하며, 당시의 감정에 또다시 빠져 있을 때, 불현듯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큰 언니는 누구의 소리일지 알면서도 언제나 같은 질문을 했다. “누구야?” 그러나 방 안에 있는 나조차도 그 질문의 정답을 알았다. 작년에 결혼하며 둘째 언니가 출가한 뒤로, 집에는 엄마와, 세진, 큰 언니만 남아있었으니까. 둘째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만 누워있던 엄마는, 그 일이 자신의 삶에 엄청난 계기라도 된다는 듯이 갑자기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큰 언니의 질문에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우리 자매가 전에 본 적 없던 매끈하게 반짝이는 구두를 벗는 소리를 냈다. 엄마의 답이 없어도 큰 언니의 물음이 하나 더 날아왔다. “엄마구나. 오늘은 어디 갔다 와?” 큰 언니는 언제부턴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종일 집 안을 지키며 두 여자의 오가는 발걸음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큰 언니의 물음이 끝없이 반복될 것임을 직감하자, 나는 그 시끄러운 잡음에서 벗어나 내 지나가버린 고백에 대한 반추로 또다시 빠져들었다. 아. 그런데 그 고백 끝에서 강현은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말이야… 그게 우리 사이에 꼭 필요한 걸까?”

반문하는 그의 물음이, 마치 내가 틀린 답을 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정말로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나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우리가 사귄다는 게, 정말 우리다운 걸까 싶어서.”


그 뒤로는 이어지는 기억이 없다. 그저 첫 질문부터 꼬이고 망해버린 면접처럼, 어버버 하다가 나왔을 뿐이었다. 아. 그때 나는 다른 방식으로 말했어야 했다. 아니. 졸업하고도 변하지 말고, 그냥 친하게 지내자고 했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 봄이 오면 술이나 한잔하자고 웃어넘겼어야 했는데. 내 반복되는 반추는 나를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두었다.


그때 밖에서 언니의 질문이 여전히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점점 짜증이 났다. 이 집은 도대체, 아무도 가만히 두지 않는 병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헤드폰을 끼고, 록 음악을 한껏 틀어 머리를 찢어지게 울렸다. 귀를 꽉 채우는 드럼과 베이스에도, 강현의 마지막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사귄다는 게, 정말 우리다운 걸까 싶어서.' 리듬을 뚫고, 강현의 말만 계속 되돌아왔다.

우리답다. 우리답다. 우리답다. 눈이 오면 겨울이라 하고, 매미가 울면 여름이라 하지. 그럼, 우리답다는 건 도대체 뭐지? 너와 나는 어떤 결을 닮았기에, 너는 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강현, 난 정말 모르겠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토, 일 연재
이전 02화2-1. 한 그루의 나무에게 마음을 고백하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