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더 온전한 사람

[2부 수관의 수줍음] episode 04

by 지은

4.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더 온전한 사람


인생의 한 챕터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분명 이런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추억을 떠올리고, 못다 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그래도 서로가 있었던 덕분에 행복했다며 다독이는 말들. 강현과 내가 자주 가던 학교 앞 떡볶이집에 앉았을 때, 우리도 그랬다. 함께한 오 년을 정리하는, 졸업생다운 대화를 했다.


“그 돼지국밥집 기억나? 왜 욕쟁이 할머니가 하시던 데... 거기 영업 종료했대.”

“헐, 우리 새벽 회식은 늘 거기였는데? 슬프다 슬퍼.”

“언제 그랬는지 알아? 우리 마지막 학회 하던 날. 다른 학회 애들은 그날 거기서 파티 열었대.”

“우리도 마지막으로 갔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대신 우리는 학회로 잘 마무리했잖아.”

“그래. 강현, 너랑 마지막까지 함께해서 참 좋았어.”


그러나 나는 그 대화가 정말 우리답지 않다고 느꼈다. 우리가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던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대화 대신에, 뻔하고 감성적인 말들이 오갔으니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누구와도 할 수 있었고, 내가 강현에게 바라는 대화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강현과 나의 대화는 언제나 우리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 있었다. 우리는 늘 숲으로, 나무의 결로, 심지어는 야생동물의 털 속에 갇혀 있는 미생물에서 대화의 소재를 끄집어냈다. 강현과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작 이런 대화로 시간을 채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지루한 대화의 끝이 되었을 무렵, 강현에게서 의외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세진이 너를 처음 봤을 때 생각난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강현은 나를 언제 봤다고 생각할까? 첫 회식? 소학회 오리엔테이션 장? 그때 우리가 대화를 한 적이 있던가...?

“너 나를 처음 본 게 언젠지 알기나 해?”

“그럼. 네가 입학하던 해의 신입생 환영회. 내가 소학회 부스를 열었을 때, 네가 와서 이름을 적었잖아.”

강현의 기억력에 떡볶이를 집던 손이 멈칫 굳었다.

“그걸 기억해?”

“난 널 보자마자 생각했거든. 세진, 네가 나와 닮았다고.”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분명히 유죄야. 내 첫 모습마저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나를 안 좋아한다고 강현?

“우리가 닮았다고? 뭐가?”

“그냥. 너도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 같았어.”

아. 강현의 말에 달아올랐던 심장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방금까지 강의실에서 노려봤던 수관의 수줍음의 사진 하나가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래, 네가 그랬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나무에게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고 말이야.

나는 강현이 무심코 내뱉은 말들에, 의미를 찾는 모든 행위가 허무해졌다. 더 이상 들뜨고, 또 가라앉고 싶지 않았다. 나 혼자서만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강현이 하려던 말을 내가 먼저 꺼내기로 했다.

“있잖아. 나 생각해 봤어. 앞으로 우리 관계는 뭐가 좋을지.”

강현은 고개를 기울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네가 같은 말을 하더라. 오늘 학회 시간에.”

“응? 무슨 말이야?”

“너무 아름답잖아. 수관의 수줍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거 말이야.”

“그게 네 답이라면, 알겠어.”

강현은 금세 내 뜻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는 이 말이, 내가 아닌 그의 본심을 대신 내비쳤다는 건 몰랐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강현과 내 고백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 고백에 답도 주지 않으면서, 나더러 고백을 회수하도록 기어코 만들고야 마는 강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아무 말이나 꺼내고 싶어 머릿속을 헤집는데, 강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근데 수관의 수줍음, 왜 그런 걸까?”

“글쎄. 최소한 부끄러워서는 아니겠지.”

나는 뜬금없는 강현의 질문에 샐쭉해져서 답했다. 그러나 강현은 굴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식물학자들도 정확한 결론을 모른대.”

“내 생각에는 서로 병을 피하려고 하거나, 아래에 있는 나무들이 햇빛을 보내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걸지도 몰라.”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럴듯한 답변 하나를 내놓았다.

그러나 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대화 사이에 강현은 종종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나는 그 정적이 늘 무서웠다. 강현이 내 말에서 틀린 부분을 발견할 것만 같았다.

나는 냉큼 강현에게 물었다.

“왜? 너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강현은 나보다도 이상한 답을 말했다.

“혹은… 나무가 성질을 부린 걸지도 모르지. ‘야! 비켜! 나 광합성 중이야!’ 이런 식으로.”

“그럼. 성격이 오히려 나쁜 거다?”

“뭐. 식물계의 일종의 결벽증 같은 걸 수도 있지. 원래 너무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더 거리를 많이 두잖아?”

강현이 농담을 하는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내 포크는 떡볶이 국물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오 년 간의 시간이 무색하리 만큼 떠나야 할 시간은 순식간에 우리의 곁에 왔다. 나는 그 시간의 모서리를 붙잡고 싶어, 강현에게 물었다.

"강현. 그런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더 온전한 사람이 있을까?"

"늘 세진이 네가 하던 말이잖아."

강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강현이 "왜 이 소학회에 입부한 거야?"라며 내게 물을 때마다, 나는 변명하듯 이렇게 답변했었다. "수관학회는 나를 찾게 해주는 곳이잖아. 그동안 나는 어디에서도 나답지 못했거든. 나답게 사는 것과 소속된 집단이 서로 충돌할 때, 사람은 얽매였다고 느끼는 것 같아.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인데, 수관학회에서만은 편할 수 있었어. 여기에서는 소속되어 있지만, 또 속해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 말의 뜻에는 그런 다짐들도 있었다. 강현이 있는 이 집단이 나의 집단이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다짐. 우리 집이 아니라, 이곳이 나의 집단이라는 다짐.

그러나 강현은 나를 정말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어디엔가 소속되었다는 사실을 극도로 혐오해 왔다는 사실조차도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


“맞아. 그런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조금은 공감해. 어쩌면 소속되기 싫은 사람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걸지도 모르겠어.”

“그건 일리가 있어. 사람은 누구나 가까이 오는 타인을 경계하는 자기만의 범위가 있으니까.”

“그럼, 예민하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 삶의 정답일까?”

강현의 말은 명확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두었던 시선을 들어 강현을 바라보았다. 마주한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마치 내 마음속, 답을 내리지 못한 불안까지도 들켜버린 것처럼.

“지금까지 내가 늘 해왔던 답은 그랬어.”

내 힘없는 말에 강현은 더는 묻지 않았다.

아. 그때 나는 무언가 강현에게 틀린 답을 내놓았다는 걸 알았지만, 덧붙일 말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차렸다. 안타깝게도, 내놓은 틀린 답보다 더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삶은 언제나 틀린 것을 발견하며, 더 옳은 무언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와 강현의 사이로 옅어진 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내 마음이 한 철을 넘어설 때까지, 그렇게 묵어 있었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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