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실록, 열두 번째 이야기
‘수련을 가, 말어?’
잠이 눈꺼풀에 매달려 있다. 주중 최고의 갈등이다. 배터리가 없다시피 한 핸드폰을 충전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막 뜯은 새 이불이다. 포근함에 한참을 밍기적거리다 일어난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연다. 하늘이 몽땅 흐리다.
일단, 몸을 데리고 나가면 어떻게든 된다. 10여 년 넘게 수련을 해오며 체득한 진리. 비가 올 것 같은 토요일 아침은, 요가 수련자에게 무척 어려운 날이다.
"선생님, 골반이 틀어져 있어서 오른 무릎에 체중이 실려요. 왼쪽 옆면이 너무 많이 펴져서 오른쪽 옆면이 찌그러져 있어요. 수업 때 한 번 봐주세요."
유치원생처럼 쭈뼛대며 수일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도움이 오길 기다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흐린 아침잠을 떨치고 요가원에 몸을 데려다 놓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너만 찌그러진 거 아니야. 알지?"
수일 선생님의 웃음 섞인 다정한 목소리가 내게 알려준다. 지금 겪는 몸의 일시적인 불편함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고통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같은 곳(지역, 집)에 계속 살고 있죠? 같은 곳에 살고 있다고 해서, 계속 같은 방향을 보고 똑같이 살 필요는 없어요. 다른 방향을 볼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어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가볼 것. 다른 방향으로 가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해요."
선생님의 명확한 수업 의도에 따라, 이번 수련 역시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해보기로 결심했다. 무릎의 불편함을 필히 해소하기 위해서.
엘보 투 니 (Elbow to Knee)에서, 혼자 수련할 때 엉덩뼈 근육을 충분히 쓰는 방향으로 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수일 선생님이 엉덩뼈 근육을 꼬리뼈 쪽으로 더 모으라고 신호를 보내신 순간, 골반이 제자리로 왔다. 일상에서도 골반을 제자리에 두고 지낼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무릎이 불편할 일이 아마 없었겠지?
터보독 (Turbo Dog)을 할 때도 엉덩뼈 근육을 모아서 쓰니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무릎이 또 무거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불편한 곳이 있더라도, 움직여봐야 또 그다음에 어디로 움직일지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선 살루테이션을 시작할 때, 느린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열린 창문으로 내리는 빗방울이 보였다. 빗방울처럼 빠른 듯 느리게 천천히 움직였다. 하늘에서 태어나던 순간의 빗방울은 눈앞에 보이는 그 속도보다 느리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런지에서는 무릎과 골반을 새로운 방향으로 두는 연습을 했다. 앞에 있는 다리 쪽의 엉덩뼈 근육은 더 모아서 쓰고, 뒤에 있는 다리 쪽 허벅지는 앞이나 뒤로 밀리지 않도록.
코브라에서도 발등을 제대로 놓고, 뒤꿈치만 모이지 않게 뒤꿈치를 바깥쪽으로 두고 쓰는 연습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맞는 방법이 내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 가운데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뒤꿈치를 바깥쪽으로 보내는 것은 '지금의 가운데'를 찾아 방향을 트는 일이었다. 과거의 내게 가운데였던 곳이 아니라.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또 받으면서 수련을 이어갔다. 언제쯤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향을 잃은 채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제야 도움을 향해 손을 뻗는 것보다 낫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왜 늘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고, 아니 해내야 한다고 생각할까?
"괜찮았어?"
수일 선생님이 수련 뒤에 물으셨다.
"네, 하는 동안 괜찮았어요."
"여기 오면 괜찮아, 선생님이 봐주니까. 혼자 수련할 때 조심해야 해."
"네."
가족이 아닌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든든한 일이다. 그 감사한 마음을 말로 전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상대가 있다. 이미, 웃으면서 눈빛으로 그 마음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런 좋은 관계가 삶에 있다는 건 과거의 내가 방향을 틀어서 온 곳이 여기, 이 수련실이기 때문임을 안다. 그래서, 오늘의 나도 수련실을 나왔다. 몇 년째 살고 있는 같은 집으로, 그러나 집을 나오기 전과는 달라진 마음 가짐으로. 이미, 수련을 하는 동안 받아야 할 도움을 거부하지 않고 다 받으며 다르게 수련을 했다. 그러니, 집에 돌아가서도 충분히 다르게 살 수 있다.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깨어 있다면, 변화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정한 방향으로 당장 움직인다면.
2023.10.14 요가실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