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실록: 포레스트 요가 수련 이야기
중국 여행에서 라이치라는 과일을 처음 먹었을 때의 탱글한 단맛. 정기권을 구매해 일본 호스트 집에서 처음으로 혼자 덴샤를 타고 학교로 통학하던 아침.
처음 하는 경험에는 긴장감이라는 친구가 함께 한다. 그 친구가 설렘으로 바뀔지, 다시 모험하고 싶지 않은 불편함으로 바뀔지는 경험을 끝까지 해봐야만 안다. 포레스트 요가 인트로 클래스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안내하는 것이, 난생처음 포레스트 요가 티칭을 해보는 선생님들에게 과연 어떤 경험으로 남을까.
요가 안내자가 아닌, 수련을 하러 온 태평한 수련자의 입장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게도 생에 요가 첫 티칭의 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한참 오래전 일이다.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기분으로 어느 정도의 긴장도를 몸에 지닌 채 수업을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주 요가원을 가지 않아서 요가원 구석으로 깊숙이 밀려난 요가 매트를 찾아서 펴고, 추위에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같은 다리 근육을 풀면서 수련하기 좋은 몸의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서로 수다를 떨면서 웃고, 수련실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는 활기에 감싸여 잘 보이지 않게 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인트로 클래스를 티칭하는 선생님들은 포레스트 요가 지도자 과정 (Forrest Yoga Foundation Teacher Training, 이하 FYFTT)을 시작한 지 8,9일 차 되는 학생들이다. 오늘 수업을 하는 팀과 내일 수업을 하는 팀,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티칭을 하고, 한 팀은 오픈 클래스에 참여 신청한 일반 수련자들과 함께 수련한다. 오늘 티칭한 팀에는 요가 수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요가 수업을 이미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섞여 있었다. 처음 보는 선생님들에 대해 미리 들은 정보가 없어도, 티칭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알게 된다. '아 실수했는데,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면서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준비한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자기 페이스를 찾으려고 하는 경우는 요가 수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수련자들을 핸즈온으로 돕는 경우는 요가 수업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도자 과정에서 처음 수업을 해보는 사람들에게는 서툴면서도 진심이 담긴, 요가 강사 초기에만 볼 수 있는 풋풋한 신선함이 있다. 이 드문 느낌을 경험하기 위해서 오늘 수련을 신청했었다. 성격이 급하고, 숨의 길이도 짧은 나로서는 다소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초보 선생님들의 수업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경우 인내심을 단련하고 있는 편이긴 하다.
요가 수업을 이미 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서는 배울 점과 버릴 점을 여럿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를 안내하는 속도, 자세와 자세를 이어 안내하는 매끄러움 같은 것들은 티칭을 여러 해에 걸쳐 하고 있어도 또 배울 점이다. 티칭할 파트에 대해서 전달할 내용을 말로 하는 것에 너무 초점을 둔 나머지, 본인이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이 빨라지는 것은 버릴 점이다. 수련을 하는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티칭을 하는지에 더 초점이 가 있는 것 역시 버릴 점이다. 수련실 앞쪽 중앙에 놓인 매트 위는 무대 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의 연기에 빠져들고, 환호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놓아 보내는 자리가 매트 위다. 이 자리는, 사람들이 각자의 매트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며 불편함에서 나와 힘을 키우고 이완하도록 돕는 사람이 수업 시작과 끝에 서는 하나의 지점이다.
지도자 과정에서 배우고 연습한 핸즈온으로 수련자들을 도울 때 손길이 거친 것, 수련자를 보며 숨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숨에만 초점을 두면서 핸즈온을 하는 것, 핸즈온을 하고 있는 수련자에게 집중하는 대신 주변의 수련자를 보며 말하는 것은 요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공부 중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이다. 그러나, 요가 수업을 몇 년째 하면서도 수련자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 역시 보완해야 하는 미숙함이다. 배울 점보다 버릴 점을 더 많이 적었지만 어쩌겠는가. 배울 것도 많고 많지만,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하는 습관 역시 많은 9년 차 요가 선생님이 되고 만 것을.
2019년 여름 발리에서 FYFTT를 할 때, 나는 4년 차 빈야사 요가 선생님이었다. 포레스트 요가 티칭을 시작한 지 1년이 막 넘어가던 때였다. 오늘 수련한 오픈 클래스를, 그때는 인스타그램 홍보 같은 것도 따로 없이 지역에서 요가 스튜디오 공지만 보고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티칭했었다. 떨리긴 했지만, 큰 실수 없는 무난한 티칭이었다. 한국말로만 티칭을 하다 영어로 티칭을 하는 게 조금 낯설었을 뿐이었다. 호세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티칭해도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호세 선생님의 동반자이며 포레스트 요가를 창시한 아나 선생님이 그 뒤에 입을 열었다.
"티칭은 잘하는데, 사람들에게 뭘 주고 싶은 거지?"
대답을 당장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님을 즉각 알아차렸다.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어색함과 익숙하지 않은 티가 나지 않도록 요가 수업을 하기 위해 부단히 연습했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었으니까. 나의 숙련되지 못함으로, 그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으니까. 청담동과 정자동에서의 요가 수업은 그런 부분들을 암묵적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2015년 빈야사 요가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말이 느리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서툴러 과연 90분 수업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했던 나의 수업에는 수련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다짐이 들어있었다. 2019년 아나 선생님 앞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티칭을 했었던 걸까. 어떤 마음이었길래 선생님은, 내게 지금도 답안지를 공백을 남겨둔 질문을 숙제로 줬을까.
지금의 내게는 요가 수업을 하기 전에 설레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사람으로 치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배우자 같은 존재라고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지겹기도 하고, 서로 너무 알아서 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은 또 하지 않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이. 둘이 같이 있을 때 더 이상의 성장이나, 어떤 재미가 느껴질지는 불투명해 보이는 사이. 그렇지만, 어느 쪽도 헤어지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 사이.
다만 그만두지 않고 계속할 뿐이다. 수업을 하기 싫은 기분이 드는 날에도, 몸이 안 좋아 취소하고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에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기복 없이, 계속 돌아올 곳이 되어주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매트 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존재가 되어주었다. 어느 마을에나 한 그루,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는 커다란 나무 같은 그런 생명체.
앞으로도 타인에게, 계속해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아나 선생님 말대로 나는, 사람들에게 뭘 전하고 싶은 걸까. 이 뒤로도 한가득 적게 되는, 다문 입술 안의 혀끝에 매달린 질문들이 있다. 키보드에 올린 손가락 끝에서 문장이 되었다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들에 답하고 나면 지금의 나는, 초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과거의 초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오픈 클래스를 마치고 눈물을 흘렸던 어떤 선생님처럼, 요가원 면접에서 내가 요가를 하며 바뀌었던 것처럼 요가하러 오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벅찬 눈물을 흘렸던 2014년의 나처럼 또 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냉정하고 차분한 상태로, 자문자답하면서 찾을 것이다. 질문에 대답할 때 느껴지는 느낌에 설렘이 들어있는지. 앞으로 전념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정말 좋아서 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지. 내가 되찾고자 하는 초심이란, 현재 2023년 11월을 살고 있는 나로서 새롭게 열리고 있는 나의 의식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방향이다. 그것은 초심을 되찾기 위한 초심이 아닌, 설렘과 긴장감이 깃든 신선한 초심일 것이다.
오늘 티칭을 했던 선생님들에게 '생애 첫 요가 티칭의 순간'이란 건 이제 없다. 한 번 해본 이상, 경험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단, 첫 순간에서 이어지는 다음 순간이 있다. 내일 티칭을 하는 선생님들 중에는 오늘 티칭을 했던 선생님들처럼 난생처음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 과정을 티칭 하는 신희 선생님과 수일 선생님이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지도자 과정을 어시스트하고 있는 체리 언니와 피치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요가 선생님으로서 어느 지점에 서 있든, 그 자리에서의 초심으로 각자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글에 담는다. 이 마음에는, 오늘 수련실에서 만났던 모두와 내가 어떤 초심으로 출발하여 어떤 미래의 자신과 조우하게 될지, 궁금해지는 호기심과 설렘이 섞여있다.
2023.11.18 요가실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