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 출처: @wgkoh
2019년 7월 24일, 나의 첫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 2일 전까지 파워 야근했던 터라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막상 마지막으로 문을 나오니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내가 이 곳에 두고 가는 것과 내가 이 곳으로부터 이고 가는 것이 분리되는, 아주 이상한 시점에 진입한 묘한 기분이었다. 이 묘한 기분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나는 첫 퇴사를 했고!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멋진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를 기다리는 행복한 임시 백수다. 3개월 간의 저세상 빡셈이었던 이직 과정을 거치며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이직 3부작을 연재한다. 그리고 이 글은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다.
프롤로그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내가 어디 가서 엔지니어라고, 개발자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그럴 만한 실력은 없는 입만 살아있는 사람일까봐 무섭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내가 지금 실력이 늘고 있는 건 맞을까, 다른 사람들은 네트워크다 서버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잘하게 될 것이 명확한 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대체 뭘까, 나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여기서 무엇을 하게 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에 사실 2017년 7월 이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 이 불안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에서 오는, 내 성장에 동반되는 필연적인 생산적 불안이 아니라 나를 갉아만 먹는 불안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내 불안과 함께 앞으로 가는 연습이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을 안고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선을, 얼마 남지 않은 나에 대한 믿음을 끌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가야 한다. 왜 이런 것도 몰라, 왜 이런 것도 공부 안 했어, 왜 과거에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어, 남들은 다 이만큼 잘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해, 자책과 자책과 자책을 딛고 마지막 골문까지 가야 한다.
나는 실력 부족하다. 개발도 그닥, 서버도 그닥, 뭐 다른 것도 그닥. 겸손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장 가치를 생각해봤을 때 ‘애매한’ 실력이다. 그것은 슬프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렇지만 이직의 한 사이클을 지난 뒤 돌아보니 부족한 나의 등을 밀어준 것은,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나. 아무것도 안 하고 성찰도 고민도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았던 그 과거의 나였다.
이직은 평가받는 일이고, 평가를 받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빈틈없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미처 감추지 못한 구멍을 계속해서 메워야만 하니까. 그렇지만 이 과정이 냉혹한 만큼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려준다.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프게 배운다. 나의 무능과 불안을 한 아름 안고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도 얹고서 조심스레 떨리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Be Yourself 가 충분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과 생각해보니 별 거 아니라는 담대함으로. 그 담대함이 절대 생기지 않아서 끝까지 죽도록 고생했지만, 휘청했을 때 다행히 붙잡아 준 이가 있었고 내 손을 잡고 같이 울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