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전씨 Jul 24. 2019

새삼 문송했던 이직, 3부작을 시작하며

커버 사진 출처: @wgkoh


2019년 7월 24일, 나의 첫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 2일 전까지 파워 야근했던 터라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막상 마지막으로 문을 나오니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내가 이 곳에 두고 가는 것과 내가 이 곳으로부터 이고 가는 것이 분리되는, 아주 이상한 시점에 진입한 묘한 기분이었다. 이 묘한 기분에 머무르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나는 첫 퇴사를 했고!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멋진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를 기다리는 행복한 임시 백수다. 3개월 간의 저세상 빡셈이었던 이직 과정을 거치며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이직 3부작을 연재한다. 그리고 이 글은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다.



프롤로그

이직에 뛰어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전환의 연속, 정치학도의 IT 생존기

남초 IT 업계에서 여자 엔지니어로서 ‘인정’ 받기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내가 어디 가서 엔지니어라고, 개발자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그럴 만한 실력은 없는 입만 살아있는 사람일까봐 무섭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내가 지금 실력이 늘고 있는 건 맞을까, 다른 사람들은 네트워크다 서버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잘하게 될 것이 명확한 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대체 뭘까, 나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여기서 무엇을 하게 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에 사실 2017년 7월 이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 이 불안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에서 오는, 내 성장에 동반되는 필연적인 생산적 불안이 아니라 나를 갉아만 먹는 불안이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내 불안과 함께 앞으로 가는 연습이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을 안고 다음 단계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곧 끊어질 것 같은 선을, 얼마 남지 않은 나에 대한 믿음을 끌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가야 한다. 왜 이런 것도 몰라, 왜 이런 것도 공부 안 했어, 왜 과거에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어, 남들은 다 이만큼 잘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해, 자책과 자책과 자책을 딛고 마지막 골문까지 가야 한다.


나는 실력 부족하다. 개발도 그닥, 서버도 그닥, 뭐 다른 것도 그닥. 겸손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장 가치를 생각해봤을 때 ‘애매한’ 실력이다. 그것은 슬프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 그렇지만 이직의 한 사이클을 지난 뒤 돌아보니 부족한 나의 등을 밀어준 것은,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나. 아무것도 안 하고 성찰도 고민도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았던 그 과거의 나였다.


이직은 평가받는 일이고, 평가를 받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빈틈없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미처 감추지 못한 구멍을 계속해서 메워야만 하니까. 그렇지만 이 과정이 냉혹한 만큼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려준다.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프게 배운다. 나의 무능과 불안을 한 아름 안고 당장이라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도 얹고서 조심스레 떨리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Be Yourself 가 충분할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과 생각해보니 별 거 아니라는 담대함으로. 그 담대함이 절대 생기지 않아서 끝까지 죽도록 고생했지만, 휘청했을 때 다행히 붙잡아 준 이가 있었고 내 손을 잡고 같이 울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