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전씨 Jul 30. 2019

이직에 뛰어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대책 없이 엉망진창으로 이직 시작했다가 눈물 콧물 다 뺀 이야기


커버 사진 출처: @wgkoh


  컴플라이언스 업무 2년, 엔지니어 경력 1.5년. 지독한 성취 중독에 허덕이며 상사의 칭찬을 먹고 살았던 나는 올해 2월 갑작스럽게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원래 이래저래 이직할 생각은 있었으나 엔지니어 경력이 짧아 올해 1년은 기술 성숙의 기간으로 둘 생각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것은 링크드인을 통해 온 구글 리크루터의 연락이었다. 사실 구글이 내게 제안한 포지션은 평소 관심이 없었던 자리고, “이제는 내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꽤 명확한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구글이라는 이름은 내게 너무나 크게 다가왔고 홀린듯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채용 프로세스를 겪으면서 든 생각은, 나는 정말 준비되어 있지 않고 평가 받는다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신입사원 채용할 때에 상대적으로 쉽게 덜컥 합격해버린 값을 이제 와서 치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고, 과장 조금 보태서 영혼이 깎여나가는 4개월이었다. 눈물 쏙빠지는 노력 끝에, 구글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외국계 B2B 클라우드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내 이직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내가 “이렇게 좀 해볼 걸” 하고 후회했던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실 일반적인 이직 이야기, 직무 별 이직 팁은 정리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다. 내 글은 진짜 이직을 위한 팁이라기 보다는, 커리어적 방황을 겪고 계신 분들이 “대체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느끼실 때 보셨으면 하는 글이다. 다른 사람은 나처럼 바보 같이 이직을 준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주요 동기이다. 아래 글에 나오겠지만 나는 정말 엉망진창으로 겨우 이직에 성공했다.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처럼 천운이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프롤로그

이직에 뛰어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전환의 기술, 정치학도의 IT 생존기

남초 IT 업계에서 여자 엔지니어로서 ‘인정’ 받기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있었던 일

구글 리쿠르터에게 Technical Solutions Engineer 라는 롤로 면접을 볼 것을 제안 받았다. HR 차원에서 1차 스크리닝 면접을 보았는데, 아주 간단한 컴퓨터 공학에 대한 지식 확인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이 면접 포함 두번째 단계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면접에서는 기본적인 트러블슈팅 문제, Google Docs 에 가벼운 코딩을 해보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코딩 테스트가 처음이었던 나는 이론적인 준비만 했는데 당연히 붙을 수 있을리 없었다.

우아한형제들 코딩테스트를 보았다. 불합격.

그 뒤에 링크드인에서 한 외국계 회사 리크루터에게 연락을 받았고, 지인에게 추천을 부탁해 채용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한 차례의 스크리닝 면접, 한 차례의 과제 제출, 과제가 합격 수준이라면 과제 내용 기반으로 화이트보딩 면접을 본다. 총 세 단계의 기술적 검증이 끝나고 나면, loop 면접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인성 면접 단계를 거친다. 눈물나게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합격했다.

한 스타트업의 DevOps 엔지니어 채용에 지원했다. 원래 관심 있게 보고 있던 회사였는데, 내가 참석했던 컨퍼런스의 홍보 부스에서 만나게 되어 바로 면접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준비하다보니 정말 욕심이 나서 아무도 안시켰는데 사전 과제 하고 난리 부르스를 떨었으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위에 기술한 순서는 채용 프로세스를 시작한 순서인데, 내가 진행했던 단계는 사실 서로 중첩되어 있어서 보통 두 개 회사는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독자가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눈치챘겠지만, 대기업 보다가 스타트업 보다가 중구난방인 데다가 모두 다른 직무로 봤다. 즉 나는 진짜 내가 뭘 잘하는지, 뭘 보완해야 하는지 대책도 목표도 없이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글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은, 이직 워밍업 기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 진짜 무조건 나갈거야”라고 ‘입 이직’하는 거 말고, 무턱대고 지원부터 해보는 거 말고 에네르기파를 쏠 ‘기’를 모으는 시간을 갖는 것 말이다. 이직은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자,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손잡고 전장에 나서야만 겨우 성공할 수 있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워밍업 기간에는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직의 이유와 목표에 대한 에세이 쓰기

  나는 비전공 출신에 엔지니어 경력도 짧고 특별하게 오래 해본 기술적 영역이 없다보니 커리어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오랜 기간 나의 기술력 향상 만을 최우선의 목표로 잡고 실천하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다음 회사 선택을 위한 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눈 앞의 목표만 좇다 보니 내가 잘 나가는 회사에 가고 싶은 건지, 엔지니어로서 깊게 파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돈이나 명예면 되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많고 다른 기술 영역에 대비해야 해서 효율이 굉장히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최소 아래와 같은 내용에 대해 A4 한 장 정도의 글을 쓴 뒤에 이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채용 과정 중에 써도 당연히 되고, 꼭 에세이 씩이나 쓸 필요는 없다. 다만 이 내용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하고 끊임 없이 복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채용 프로세스에서 복음처럼 들고 있어야 한다. 내 의지와 정신력이 흔들릴 때면 언제든 참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음에도 어렵게나마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 가지 꼽으라면, 장기적인 커리어 목표와 이직하고자 하는 이유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질문에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은 더하고 불필요한 것은 제하며 자신 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아래 내용을 녹인 글 하나를 만들어 본인의 스토리를 직조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0. 커리어 목표

내 장기적 커리어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 목표를 생각했을 때 나는 지금 어떤 단계에 있나?

그 목표를 생각했을 때 향후 5년 간 내가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1. 이직의 이유

0번을 고려할 때, 지금 회사를 퇴사하고 싶은 이유?

부서 변경, 휴직, 대학원, 퇴사 후 진로 재설정이 아니고 ‘이직’을 대안으로 선택한 이유는?

2. 이직의 목표

0번을 고려할 때, 새 회사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선택한 회사는 어떠한 점에서 나의 목표를 이루게 해줄 수 있나?

선택한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아니지만 포트폴리오 만들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은, 타인에게 위탁했던 가치평가권을 되찾아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꽉 채운 4년, 그간 사실 난 신입사원 마인드로 늘 살아왔다. 사수가, 상사가 잘했다고 하면 내가 무엇을 했든 그냥 잘한 줄 알았다. ‘일 잘 하는’ 사람의 모습과 지금 나의 상태를 전적으로 그들에게 위탁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고, 그 현장에 '나'는 없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지났을 때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 강연을 듣게 됐다. 그는 시간의 이력이 아니라 커리어를 선택하는 '나'의 이력을 꾸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타이틀이 내게 주는 그냥 지당히 갖고 있을 것 같은 능력에 더해, '자발적인 동기 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 즉 한 끝의 탁월함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그 당시 그의 강연과 책을 보며 절절한 감동과 인사이트를 얻고서 그냥 허버허버 급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이직을 하려고 보니 애매한 경력의 4년차가 갖추어야 하는 것은 단연 그 '탁월함'이었다.


 나는 그래서 시간의 이력을 세운 뒤에 그 각각의 단계에서 나의 크고 작은 아웃풋을 STAR 양식에 맞추어 나열하고,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정리했다. 그 누구에게 보여준 적은 없지만, 이렇게 나의 '한 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진정한 selling point 가 뭔지 나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한다. "나라면 뽑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이 사례에서 실제로 내가 만들었던 엑셀 시트 및 메일 자료를 개인적으로 참조할 수 있도록 링크를 걸었다. 나는 아래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하고 실험하여 실제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나가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전임자가 하던 대로 할 수 있었지만, 더 효율적인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한 것을 나의 한 끝으로 잡았다.


Situation, Task

-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어카운트에서 발생한 장애 건수, 변경 건수, 휴먼 에러, 실패한 작업의 통계와 이슈, 이에 대한 액션 플랜을 AP에 보고해야 했다.

- 전체 13개 고객사에 대해 매월 백 건 단위의 장애, 만 건 정도의 변경 작업이 수행된다.

- 코리아의 서비스 사업부의 비즈니스 헬스체크 지표이자 다른 사람들의 개인 성과 지표에 반영되는 자료라서 실수가 있으면 안됐다.


Action

- 내가 그 지표를 만들어야 했는데, 전임자가 일하던 방식은 너무 많은 자료의 너무 많은 필드를 눈으로 보고 셈을 하는 방식이었다.

- 나는 박스라는 툴을 이용하는데 사람들이 로우 데이터를 한 파일에 같이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하고
- 입력된 필드에서 자동으로 연산되도록 했다.


Result

- 풀로 하루 작업하고 반나절 상사와 리뷰했던 작업을 리뷰 포함 1일로 소요 시간을 줄였다.
- 먼슬리 미팅할 때에도 자료 취합과 이슈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여러 파일을 띄워놓고 버벅버벅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깔끔하게 한 파일에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실수에서 배우는 모습을 보고 이걸 시스템적으로 개선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매니저가 상도 주시고 했다.
- 사소한 부분이지만 신입 시절이어서 팀원들의 신뢰를 사는 좋은 기반이 되었다.




객관적 실력 만들기

  그냥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는 사람이 1.5년 만에 갑자기 뚝딱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어 있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정말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회가 찾아와버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해,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라는 말을 늘 하니까,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내가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진 것 같다. 그리고 한심하고 멍청한 건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상태이니까. 내가 그런 사람인 걸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밀고 나갔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모두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독이었다. 면접 날짜를 받아두고서 갑작스레 BFS, DFS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상황인 거다. 잡 오퍼를 받았을 때, Glassdoor 와 잡플래닛에서 기출 문제를 모아 리스트를 쭉 만들어 놓고 그 중 절반 이상을 새로 배워야 한다면 그 오퍼에는 응해서는 안된다. 스스로를 위해서 그러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 연마하는 것을 단기간에 속성으로 하려다가는 몸 뿐 아니라 마음을 다친다..! 대신 오퍼를 쭉 받아보고 스스로의 기출 문제 리스트를 만들어서, 나의 준비 정도를 확인하고 캐치업 플랜을 짜는 것을 권한다. 그 캐치업 플랜은 6개월 정도로 커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천천히 실행해나간다. 나는 사실 당장 이 공고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조급했던 마음도 컸는데, 내가 3월에 봤던 자리를 아직도 채용 중인 것을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만약에 그 자리가 없다 해도 이렇게 준비해서 다져 놓으면 반드시 그걸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다른 포지션이 나올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급하게 쫓아가려면 당연히 가랑이가 찢어진다. 다리 길이도 좀 늘리고 운동도 하고 해야지.




  다 쓰고 보니 깜짝 놀랄 만큼 TMT 해버렸다. 모쪼록 필요한 분께 필요한 말로 가닿았기를 빈다.



작가의 이전글 새삼 문송했던 이직, 3부작을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