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크러시와 야망보지 그 사이 어딘가에 서서 쓰는 글
나 염전, 2010년 고3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알파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때는 알파걸이 뭔지 몰랐다. 자기 입으로 정의를 말해주기 껄끄러워하는 선생님의 반응에 혼자 뜻을 찾아보았다. 뜻을 찾고서는 ‘하! 이게 바로 나지!’라고 생각했고 그 호칭이 꼭 마음에 들어서 내 마음 한편에 늘 두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을 찾는 데에 희열을 느끼고, 마침내 그 말을 찾으면 그 말의 정의를 최대한도로 채우면서 사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요즘 말로 하면 컨셉충이랄까.
그 알파걸이 고등학교 생활을 할 때는 ‘스펙’이라는 게 등장했던 시기라, 그때부터 여러모로 성취 중독적인 삶을 살았다. 실제로 대학생이 됐을 때도 당연히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게다가 용돈벌이까지 해야 했으므로 더 바빴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커리어’라는 게 있었고, 상사의 인정과 승진과 연봉협상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Top Performer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수줍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으쓱했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완벽주의자였고 성장은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진, 신자유주의*가 낳은 알파걸, 모범생, 꿈이 있는 대학생, 신뢰할 수 있는 동료/부하직원이었다.
* 신자유주의: 자유방임적인 자유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국가에 의한 사회 정책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자유 기업의 전통을 지키려는 사상. 개인과 기업의 자율을 정부 정책 대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2016년 정도였다. 그리고 2017년이었던가, 야망 보지가 되기로 한 것이. 야망보지 담론은 사회 고위 간부/임원급에 여자가 부족하고 더 많은 여자들이 고위직에 진출하자고 마음먹고 이를 위해 정진하되 이 과정에서 제약이 되는 것들을 필요하다면 버리고 가자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비혼, 비출산, 비연애 등이 포함된다. 뼈까지 한녀인지라 사실 지금 보지를 보지라 하는 것도 걱정이 되지만, 야망보지의 취지에는 끝도 없이 공감할 수 있다.
야망보지를 접하기 전에도 나는 페미니스트였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시위에 매번 참석하고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렵게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성취 중독인 데다가, 페미니즘은 알면 알 수록 ‘내가 잘하고 있나? 이것밖에 못하나? 이래서 세상이 바뀌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여러모로 훨씬 더 고민이 많아졌다. 그런데 마침 야망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말을 만나버린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나 개인이 평생 추구해온 일이고 지금까지는 잘해왔던 일이다. 야망보지는 마치 알파걸처럼 나에게 꼭 맞는 말이자 사명이 되었다. 나 같은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2년 정도 눈 꼭 감고 일만 했다. 나 개인의 성취와, 페미니스트로서의 성취를 위해.
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민 끝에 탈코를 했다. 여러모로 ‘예쁜’ 내가 나의 사회적 성공과 엔지니어로서의 발돋움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꽤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그 뒤로 탈코까지 한 야망 넘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회초년생으로서의 내가 계속해서 충돌했다. 사람이라면 할 수도 있는 실수, 누군가 내게 ‘죽고 싶다’고 가져온다면 ‘그렇게 오버할 필요는 없어’라고 말할 실수, 처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운 문제들, ‘나 혹시 소질이 없는 걸까’라고 묻는다면 ‘그거 해보고 알 수 있을 만큼 소질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할 문제들을 지나면서 나는 계속해서 부서졌다가 조악하게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깨진 뒤에도 다시 빠르게 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본래 신자유주의의 노예였던 나에게, 야망보지 담론이 부스터를 달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내 목표를 위해 남초 회사에서 탈코까지 한’ ‘앞서 나가는’ 페미라는 완장까지 달아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완장은 아무도 달아준 적 없고 나 혼자 달았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스스로 찬 이 완장을 되새기며 내 멱살을 잡아 해결해나갔다.
직선으로 갈 리 없는 인생을 직선으로 놓고 보면, 당연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너무 많이. 나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10살 때부터 코딩을 한 더벅머리 고등학생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페미니스트이지만 거리의 활동가는 되지 못한다. 나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에 투자하지만 특출 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뭘 잘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애다. 나는 청원은 열심히 하지만 청원이 누군가의 인스타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모르는, 입만 산 페미다. 커리어라는 직선, 페미니스트라는 직선 둘 중 어느 곳에서도 나는 내가 ‘만족할 만큼’ 상위권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만족할 만큼이라는 게 얼마만큼이냐고? 모른다. 그게 성취 중독자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 ‘만족할 만큼’은 타인이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더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제는 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타인이 등장해버렸기 때문. 근 2년 동안 서점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서가 한 부분을 빼곡히 ‘열심히 살 뻔했다, 있는 그대로도 괜찮아’라는 류의 책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수가! 무슨 말이야, 나는 평생을 열심히 사는 것밖에는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시류는 나에게 또 다른 눈을 열어주었다. 내 마음속 내밀한 곳 어딘가에서 ‘나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직선에서는 너무도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노멀크러시는 내가 추구해본 적 없는 것인데?! 워라밸은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고 커리어에 목숨 거는 게, 야망 풀로 채워 달리는 야망보지가 내 인생이었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마침내 끊어져버렸다.
어떻게 끊어졌냐면, 일단 일상이 사라졌다. 새로운 걸 배움에서 오는 성취감도 없고, 고양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도 없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경험도 없고, 내게는 중압감 만이 남았다. 놀기도 해야겠는데 공부도 해야겠고 일도 해야겠고... “아 xx 해야 하는데, 아 yy 되어야 하는데, 아 zz를 과거에 했어야 했는데...”가 나의 24시간을 가득 채웠다. 인터넷으로만 만나다가 최근에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만난 친구는, 내 요즘 생활을 듣더니 “번아웃 초기 증상 아니냐”라고 했다. 번아웃은 ‘뻔하다’고 생각하여 정의도 찾아보지 않았던 내게는 조금 놀라운 말이었다. 찾아보니 실제로 그런 것 같아서 더 놀랐다.
가장 중요하게는 인성이 박살 났다. 이런 키치한 말로 표현하면 그 중요성이 유실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심각하게. 나는 내 마음속에 모두를 줄 세우고 한 명씩 헐뜯었다. 누구는 이런 게 부족하고, 저런 게 부족하고, 이런 건 나보다 잘하고 저런 건 못하고... 누군가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꼽게 보였다. “그런 시간이 있나 봐?^^” 이렇게. 내 beloved 직장 동료는 내게 “이런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은 그런 걸 입 밖에 내지 않고, 저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라고 평가하고 말아 버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내 어딘가가 고장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 나는 나를 어떤 프레임에 두고,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찍어 눌러버릴 때 가장 화가 난다.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내가 남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커리어에 목숨 걸고 사람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진짜 페미 vs 가짜 페미 판별이 실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나는 그 두 기준 모두에서 그 무엇도 아닌 데다가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있지도 못하니까, ‘이성과 합리’를 손에 쥐고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성을 포기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있을 수가.
이제 그 무서운 사람, 자신 만의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재단하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가치라는 것을 도저히 모르겠으니까. 알파걸이지 않으면, 야망보지이지 않으면 내가 나 스스로의 가치를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타인을 밟고 섬으로써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칭찬이/비판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게 하지 말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되지 말자 다짐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 글은 내 메모장에 아주 오랜 시간 있었던 글이다. 야망보지라는 말을 퍼블릭하게 쓰는 게 무섭기도 했고, 진짜로 야망야망 하느라 ‘여유있게 글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안 쓸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조금 더 젠더중립적인 글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나의 인성 파탄은 심각해져갔고 어딘가에 틀림 없이 나와 비슷한 야망 보지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용기내서 글을 발행한다.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 것만큼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은 늘 어렵지만, 이렇게 반성문 같은 글을 쓸 때에는 더 그렇다. 나 이렇게 거지 같은 사람이에요,라고 잔뜩 늘어놓고서 마법처럼 짠 앞으로 잘해볼게요,라고 하는 철면피는 못되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 브런치가 늘 그랬듯, 초중딩 때 쓴 반성문이 그랬듯, 오늘도 다짐으로 끝을 낸다. 이렇게 내놓고 쓴 만큼 공허한 다짐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평생 그렇게 남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바뀔 리 없다는 것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나는 조금 더 높은 자리에 더 많은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되도록 나도 그 여자이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나 스스로를 구타하고,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면서는 안된다. 그 자리에 가기 전에 무슨 일이 나도 날 것이다. 이수인, 엄윤미 님께서 번역한 <리부트>에서 “빨리 움직일 때, 진정으로 내 삶을 채우지 않을 때, 가만히 서있지 않을 때, 진실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쉬워진다”(117페이지)라는 문장을 만났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건강하게,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 자는 단상에 오르기 전에 쓰러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염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