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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ul 25. 2020

여자의 일(4) - 회고는 건조하게 딱 한 번만

반추는 소나 하는 것이다!!

여자의 일 5부작


1. 들어가며

2. 자리 보고 존버합시다

3. 싹싹하고 센스 있는 여직원 만큼은 절대 되지 말자

4. 회고는 건조하게 딱 한 번만

5. 제발 여성 리더십 보고 부드럽다고 하지 마세요



나는 패턴 찾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건들을 보면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그 구조를 중심으로 다시 연역적인 해석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종종 나 스스로를 80점 짜리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왜냐면 나는 배우는 것이 빨라서 어디서든 초반에 두각을 드러내는 반면, 곧 뒷심이 약해서 대충 마무리 하는 식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점에서 출발해서 60점으로 끝나서 평균적으로는 80점인 사람. 고3 한 해 동안 나의 성적표를 봐도 그렇고,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개발할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한 번 이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되니, 나의 행보들이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어 나 그렇게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서 이러는 거 아냐 혹시?"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스스로가 되게 통찰력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고삐를 쥐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걸어온 길을 정확히 알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것은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 그런 반면에 오히려 내가 나 스스로의 한계를 지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다. 이 연재물에서 다루고 있는 세 책 (<내_일을 쓰는 여자>, <출근길의 주문>, <일하는 마음>)이 대체로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갖는 반면, 회고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출근길의 주문>에서는 인상 깊은 회고 관련 구절이 없어서 나머지 두 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어떤 회고는 필요하다

전문성이 한 가지 이름의 직업과 결부되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일을 바라보는 접근법,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수 있는 중심 기술과 연결된다. 크고 작은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여 ‘우연히’ 다음 단계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는 것,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찾아가는 것. 전통적인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파편적인 경험들을 관통하는 ‘이름’을 붙이고 말하는 것. 
ㅡ제현주, <일하는 마음>


2017년, 평생 뭔가를 못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완전히 바보인 상태부터 새로 IT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인격적으로 존경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전문성' 차원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너무 분했다. 나는 그래서 그 전문성이라는 것에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신 없이 달렸다. 9-6 일을 하고, 퇴근하면 12시까지 수능 때처럼 시간표를 짜서 공부했다. 그러다가도 아무리 난리쳐봐도 내 커리어는 중구난방 엉망 진창에다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 같고, 나는 실패해버린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가만히 있어도 좌절감에 눈물이 툭 쏟아질 것 같은 때에, <일하는 마음>의 구절을 읽고 다시 일어설 힘을 좀 얻었다.


나는 전문성의 척도에서 봤을 때 아주 좌절스러운 상태였다. 그렇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명확히 있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던 그 때에도 나는 물을 붓고 있었다. 쌓이고 있었는가의 전략과는 별개로, 끊임 없이 물을 붓던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마침내 지쳐쓰려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오래 멀리 가기 위해서는 내가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충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내가 밟아온 돌을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꼭, 꼭, 꼭 <일하는 마음>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어떤 회고는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 일기를 쓰고, 주말에는 주 회고, 월말에는 월 회고, 분기에는 분기 회고, 반기에는 반기 회고, 연말에는 연 회고를 한다. 바빠지면서 건너 뛰는 때도 많지만 꽤 이 회고 주기를 잘 지키는 편이다. 뭐랄까 나는 회고에서 나오는 인사이트도 좋지만, 실은 회고 그 자체 내지 회고를 하는 나 자신을 좋아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나? 글쎄, <내_일을 쓰는 여자>를 보고 나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반복적으로 과거의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 뇌는 그런 사고패턴에 익숙해진다. 이것이 반복되면 자책하고 후회하는 신경회로가 형성되고, 반추적 사고가 기본 사고방식으로 굳어져버린다. 무슨일이든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즉시 반추적 사고방식을 자동 재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인데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이 이상 좋아질 수는 없을까?’, ‘대체 나는 왜 이럴까?’ 등등.
ㅡ<내_일을 쓰는 여자>

<내_일을 쓰는 여자>에서 말하는 '반추'는 각 잡고 하는 회고라기 보다는, 어떤 일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자다가 이불킥하는 일에 가깝다. 그럼에도 회고라는 큰 틀에서 이야기를 같이 하는 이유는, 회고의 전략을 명확히 한 뒤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회고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주제로 하느냐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겠지만 나는 이렇게 한다. 지정된 기간 동안 발생했었던 주요 사건을 나열하고, 각각에 대해 1) Fact 2) Feeling 3) Finding 4) Future Action 5) Feedback 을 적는다. 5)Feedback의 경우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생략한다. 이때 목적은 발생한 객관적인 사건에 대해 내 감정을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여기에서 나오는 '패턴' 내지 인사이트를 찾아서 향후에 어떻게 해보는 것이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이럴거면 왜 하냐 진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회고를 잘 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캘린더를 돌아보면서 쭉 적어보는데, 그 과정에서 이미 너무 감상적이어져서 다시 그때의 생생한 감정에 과몰입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정리할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냥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수준으로만 대충(..) 회고를 하고 잠들어 버린다. 이런 회고는 단언컨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야 뭐 당연하고 시간 낭비인 것도 당연하고, 태만한 회고는 오히려 기존에 갖고 있는 본인에 대한 안 좋은 자기 인식을 더 강화하기만 한다. 잘못했던 일이 생각나 괜히 괴롭기만 하고 나 스스로를 80점 짜리로 만들고 마니까. 회고는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인사이트가 나올 수 있는 주기를 본인이 경험적으로 정하고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정성들여 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신 건강과 내 태도를 해한다.



“반추적 사고는 정말 여성을 잡는 쥐약이에요. 똑똑하고 유능한 여성들도 이 함정에 빠지는데,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여성에게 이런 습관이 있으면 완전히 망가질 수 있습니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자신감 있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실제로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도 반추적 사고에 중독되어 있다면, 거기서 벗어나는 마법의 문장을 하나 만들라. 반추는 소나 하는 것이다!! ㅡ<내_일을 쓰는 여자>






세 줄 요약

1. 회고는 해야 한다. 나 자신의 스토리를 쓴다는 느낌을 잃지 않기.

2. 회고 하는 자기 자신에게 반하지는 말자. 시간 낭비 + 에너지 낭비.

3. 잘못된 회고는 오히려 자신을 갉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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