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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May 19. 2019

불안을 연료로 쓰지 않는 오래 달리기

이직하며 만난, 2018년의 나에게

발리 여행 후기를 제외하고 올해 쓴 글이 없다니, 부끄럽다.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쓰겠다고, 멈추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올 상반기는 그러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그간 나는 바빴다. 이직 준비에 마음을 졸이고 부족한 내 실력을 탓하고 노련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던 질문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나를 앞으로 가게 하나, 무엇을 원하기에 계속해서 가는가에 대한 질문들.


어제 한 스타트업의 면접을 봤다. 면접자께서 피드백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피드백 받은 내용에 대한 개선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동료로부터 처음 받아본 피드백 중 부정적인 부분은 조급하다는 것이었고, 이걸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일기를 많이 쓰고, 매일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게 어떻게 조급함을 해결해주느냐고 면접관이 이어 물으셨다. 말하다가 울컥해버렸고, 내가 대답하지 않았던 그 질문이 목으로 차오름을 느꼈다.


마침내 인생이 실패해버렸다고 생각했던 2018년의 나

반복적인 업무와 합리적이지 않은 업무 지시,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혹은 태초에 존재는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조직의 비전, 업무 중 쌍욕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무능과 무지에 뻔뻔한 사람들.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가장 화가 나고 두려웠던 것은, 이 환경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는 나 자신이었다. 그게 나 같이 괜찮은 대학가서 괜찮아보이는 회사 들어가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적당히 인정 받으며 사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감정이었다. 무능감의 습격에 손 쓸 사이도 없이 나는 조급해져버리고 말았다. 이래서 되겠어? 사실은 니가 원하는 그런 거 다 이뤄낼 능력 애초에 없었던 거 아냐? 니가 지금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 있어? 미드 볼 시간이 있어? 그 시간에 공부해야지. 너 사실 니가 그렇게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랑 별 반 다를 바 없는 사람 아냐? 내 안에 나를 가두고 흠씬 두드려팼다. 


실패와 잔존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렇지만 세 발짝 마다 한 번씩 주저 앉게 만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실패가 계속해서 내 뒤를 좇아 온다고 생각해서 멈추어 생각해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삼보일좌절의 과정에서, 이전의 내가 문과생으로 자랑스러워하던 나의 정체성을 잃어간다고 생각했기에 정체성의 혼란은 더 거세어졌다. 실패와 남겨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 나는, 오래 가지 못할 불안의 모터를 달고 움직였다. “잘 지내니?”라고 누가 툭 물으면 눈물부터 쏟아질 만큼.


작고 간절한, 나의 구원책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은 내가 작년에 내 인생이 실패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에 나를 구해준 몇 안되는 일이었다. 거대한 불안 때문에 공부가 잘 될 리 없었다. 이것도 잘 안되는 것 같아, 저것도 잘 안되는 것 같아, 그럼 이걸 해볼까, 아 아무것도 안되잖아!!! 의 무한 반복 속에서 “내가 대체 뭐하는거지”라는 질문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퇴근해서 집에 온 어떤 날에는 그냥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더 이상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상정했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하루에 어떤 일을 하면 내가 나 스스로를 이런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지 써보았다. 회의 시간에 질문하기, 내가 읽는 기술 블로그들을 조금 더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기,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것을 만들기. 한층 더 구체적으로 세부적인 할 일을 적어나갔다. 매일 고양이 15분씩 놀아주기, 아침에 수영가기, 관심 분야 기술 블로그 열심히 읽기......


이 할 일들을 되도록 매일 하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목표 자체는 매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 주 3회는 하기 정도. 실패가 두려운 나를 위한 마지막 후퇴선을 만들었다. 이것만 다 하면 이번 주는 성공한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2019년의 나는,

꾸준히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떻냐고? 작고 꾸준한 성취를 이어갔고, 내 상황을 바꾸어 보기 위해 면접도 계속해서 보고 있다. 한 발 더 앞으로 갔다고 할 수 있을 그렇지만 면접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다 울컥한 것을 보니 아직도 나는 두렵다. 극복하지 못했다. 실패가 두렵고 나 스스로를 실망시킬 나 스스로가 두렵다. 두려워지지 않을 날이 올까?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것이 나의 주 에너지원이 되지 않도록, 성실한 하루의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수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불안함에 울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2018년의 나를 꼭 붙잡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니가 거기서 정말로 멈춰버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하며 앞으로 갔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됐다고. 고맙다고, 그만 울어도 된다고. 이제는 과거의 나를 믿고 용감하게 가야지, 하고 이직 실패의 두려움과 마주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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