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개인적 멘붕을 더한
올해 겨울은 나에게 아주 어려운 시기였다. 한 가지 이유는 이직과 승진과 미국 진출(?)이라는 외재적 동기에 의해서만 살아온 나에게 드디어 다음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인생에서 기억하는 한 가장 동력을 잃은 상태이다. 내 자아상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건강한 자아상을 세우려면 필히 1) 내가 바라보는 나와 2)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한 앎이 선행되어야 하고 각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미국에 오는 시기와 내 커리어 여정, 개인적 생활에서의 변화가 겹쳐지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에 대한 인지가 여러 이유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예를 들면…
1.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인데 받는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함 - 정말 작은 예부터 들면 한국에서 늘 L이나 XL을 입어야 했던 내가 미국에 오니 M 사이즈가 되어버렸고, 그 말인즉슨 나보다 큰 면적을 차지하는 사람들 속에서 물리적으로 작아진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도 되었다. 나는 늘 나댄다는 평을 받는 편이었지만 여기 오니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2. 30대가 되면서 친구들이 ‘나이’ 얘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준과 그 안에서 본인들의 ‘급’ 및 나잇값에 대한 얘기를 계속 듣게 되니 나도 괜스레 불안해졌다. 나는 아직도 옷장 90%가 맨투맨과 후드티이고 학점을 일로 대체했을 뿐이지 연애와 진로가 전부였던 대학생 시절과 별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는데, 갑자기 결혼 스펙과 노산과 명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낯설었다. 지금 나 같은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3. 내 업 자체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가르치거나 그들을 진두지휘 하거나 해야 하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만만해 보이고 화려해 보인다. 나는 또 예전부터 브런치와 책, 강연들을 통해 내 얘기를 외부에 많이 해왔다 보니 더더 그런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실제 생활에서의 나는 좀 걱정스러울 정도로 도파민 중독자이고, 가장 큰 고민은 운동을 몇 시에 갈 것인지, 저녁을 뭐해먹을 것인지 뿐인 데다가 다른 고민들은 너무 찌질하고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일에서의 나와 그 밖에서의 내가 너무 다르다 보니 괴리감이 더 느껴진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생각 정리 없이 오다 보니 불필요하게 혼란은 가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도 혼란스러워졌으며 내가 생각하는 나와 외부로부터의 피드백과의 괴리가 커졌다. 달리 말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새로이 정의해야 하는 요구를 나 스스로부터 받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리얼 오춘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커피챗을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에게 해야 하는 질문들을 다른 분들께 위탁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내가 가진 경험을 나누기로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총 48분과 커피챗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간 해왔던 결정을 되짚어 볼 수 있었고 그분들이 고민하시는 부분들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했다. 잠깐 한국을 방문하면서는 AWKRUG에서 준비해주신 Women in Cloud 밋업을 통해 약 60 명 정도의 여자 엔지니어 분들을 만났다. 한 분기 동안 100여 분들을 만나며 깨달은 것은 2023년까지는 전문지식과 경험과 타인의 인사이트를 잘 소화시켰어야만 했던 인풋의 시간이고, 지금 나는 그것들을 내 언어로 잘 다져서 밖으로 내보내는 아웃풋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셨던 질문들을 다시 한번 쭉 늘어놓고, 아주 긴 답변을 남기고 싶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아무래도 “미국에 사는 거 어때요?”라는 질문이다. 이 거대한 질문에 후속하여 들어왔던 작은 질문들을 다 고려해 볼 때, 나는 종국에는 이 질문이 “님이 한국에서 평생 살면서 쌓아온 인간관계와 약간의 성취, 이미 마련해놓은 자리를 다 두고 갈 만큼 미국이 좋던가요? 남들에게도 추천할 만한가요?”라고 묻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산다’는 것을 1) 경제적인 관점, 2) 아주 표면적이고도 기본적인 생활이 어떤지 의식주 관점으로 정리하고, 3) 외롭지 않냐라는 관점에서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들과의 달라진 양상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가족들의 손을 비동기적으로만, 시간차를 두고 잡아줄 수 있는, 그리고 그리하여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약간의 슬픔에 대해 지난 글로 가족 부분을 갈음하고 3-1) I 90% 내향인도 친구 사귀면서 살 수 있을까요, 3-2) 완전 타지에서 마음이 맞는 연인을 만날 수 있을까요, 3-3) 한국 직장처럼 깔깔메이트 사귈 수 있을까요 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미국에서 사는 거 어떠냐는 질문의 자매품으로 “미국에서 일하는 거 어때요?”라는 질문 역시 단연 정말 한 분도 빠짐 없이 하셨다. 비슷하게 모든 후속 질문들을 종합해서 생각해볼때 이 질문은, “한국에서 그래도 일 괜찮게 하면 미국에서 인정 받을 수 있나요, 제가 미국에서 일한다면 한국인이기 때문에 약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한국에서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요”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 전반적인 기업 문화의 차이 — 한국인 직장인 특이 미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2) 한국인이어서 기본 탑재가 안된 미국 직장인 태도와 내가 그걸 보완하는 방법, 3) 모든 직장인의 숙제, 영어에 대하여 — 어느 정도가 되어야 미국에서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 나눠서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