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정말 개인적인 관점에서 미국 사는 감상을 적어본 것인데, 읽으시는 분들께 각각이 장점일지 단점일지 무게를 달며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의식주 관점에서 미국이 한국 대비 어떤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느 지역, 어느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서 '미국'이라는 게 너무나 사람마다 다른 경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마존 오피스가 몰려 있는 South Lake Union 에서 살고 있다. 워싱턴주 자체는 2021년 통계에 따르면 60%가 백인인데, 내가 사는 곳은 회사 사무실이 몰려있는 동네이고 가족들이 살기 적합한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에 보통 테크 기업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산다. 특히 정말 많은 인도인, 중국인, 나 같은 한국인들이 포함된다.
한국에서 '추레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맨투맨과 후드를 교복처럼 입고 헐렁한 슬랙스를 색깔만 바꿔가며 입고 화장도 안 하고 담백하게 다녔을 뿐인데... 그래서 다른 옷을 입고 싶다가도 괜한 자존심에 굳이 맨투맨을 더 고집하기는 했지만 내가 좀 안 좋게 보이나 걱정이 되고 주눅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나는 시애틀에서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가 없다. 부서마다 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사무실에서는 사람들이 정말 거의 아무거나 주워입고 다니는 수준이기 때문에, 누군가 정장을 입고 있다면 눈이 획 돌아간다. 정부, 학계, 법조계 등 전통적인 직장이 많은 동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고 하던데 최소 시애틀 사람들은 파타고니아 경량패딩, 조끼를 문신인양 입고 다닌다. 나는 정말 자연스럽게 blend in 할 수 있는 분위기인 반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약간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화장일텐데 미국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일하러 올 때는 거의 화장을 안 하는 것 같다. 해도 아주 얇게 하는 느낌? 한국에서는 화장이 예의라는 얘기까지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차이점이다.
시애틀의 외식 물가는 놀라우리만치 비싸다.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다른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서 정말 1불짜리 피자를 먹을 수도 있고 1000불짜리 파인다이닝을 할 수도 있고 가격대가 촘촘하게 쪼개져있는 반면 시애틀은 그저 그런 식당들의 가격도 꽤 비싸다고 한다. 뭘 먹든 밖에서 먹으면 진짜 저렴하게 먹어도 30불은 내야 하니 저렴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적절한 가격에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사 먹을 수 있어서 늘 먹는 것이 즐거웠는데 처음에 와서는 좀 고생을 했다. 여기서는 밖에 나가서 아주 만족스러운 외식을 하게 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자연스럽게 강제적으로 요리천재가 됐다. 그러다보니 나는 건강한 식재료를 생각해서 먹게 되고 결국 더 건강해졌다. 좋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외식만 하던 시절이 종종 그립기도 하다.
한국 음식과 식재료가 미국 전역에서 정말 큰 인기라서 사실 한식 자체가 그리울 일은 없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김치를 어렸을 때부터 안 먹었는데 외국인 동료들이 나보다 김치를 더 먼저 찾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제 요리를 어느 정도 하게 되면서 뭔가 먹고 싶은데 못 먹는다는 절절한 감정은 없다. 그렇지만 참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는데... 콩국수, 곱창구이/전골, 소꼬리찜, 막회... 이런 길거리 스타일 찐 한국 음식은 찾기도 어렵고 여기서 식당을 찾아도 그저 그래서 한국에 가면 꼭 먹고 온다.
사는 곳은 정말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미국이 훨씬 좋다. 내가 미국 생활에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주거 부분이다. 집값? 비싸다. 그래도 다행히 그 값을 충당할 만큼은 벌고 있고 한국에서도 꽤 비싼 지역에서 살아야 했었기 때문에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가 미국에 살면서 정말 만족하는 점은
1. 인구밀도가 낮음. 어딜가든 사람이 넘쳐나는 서울에서 평생을 살았다보니 시애틀의 한적함이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평화를 주는지 매일 느끼고 매일 감사한다. 9호선 지옥철에서 남의 살갗을 느껴야 했던 일들, 대중교통에서 자리가 나서 앉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 한껏 다리를 오므려야 했던 때, 길을 다니며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 몸을 움츠려야 했던 때, 급할 때면 송사리처럼 사람들을 헤쳐나가야 했던 때들... 이런 것들이 나를 얼마나 피로하게 했는지 참... 평생 그렇게만 살아봐서 불편한 줄도 몰랐는데 미국에 오지 않았으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2. 건물의 전반적인 높이가 낮음. 이 부분 역시 미국 어느 지역에 사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텐데, 내가 있는 곳은 건물 높이가 전반적으로 10층 안짝이다. 10분 정도 걸어 중심지로 가면 물론 40층짜리 건물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다들 키가 작아서 하늘이 잘 보인다. 위와 마찬가지로 나는 한국에서, 특히 강남에서 일하면서 의식해서 하늘을 보지 않으면 한 번도 그 날의 구름이 어떤지 알지 못한채 지나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날씨가 안 좋아서 이게 하늘인지 건물인지 모를 때가 아니라면... 키가 작은 건물들 위로 가득 찬 하늘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3. 도시에 따라 가격과 공간 인지는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집 사이즈가 크다. 내가 520sqft (15평) 정도 되는 원룸에 살고 있는데 당시 내 매니저가 "지원 너 그런 집에서 살아서 괜찮겠어"라고 물어봤었다. 나는 그 전에는 7평짜리 원룸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대궐 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의아했다.
4. 그럼에도 참을 수 없이 한국이 그리워지고 미국에 실망하게 되는 때는 냉난방을 해야 할 때다. 시애틀은 기후변화 이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많은 집들이 에어컨이 없다. 그리고 여기는 한국 같은 시스템 에어컨이나 벽걸이형 에어컨, 타워형 에어컨 같은 것들을 하려면 정말 말도 안되는 공사를 해야 해서 집을 사는 게 아닌 이상에야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아예 신축 아파트를 들어가거나 선풍기를 놓고 살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같이 언제나 더웠던 곳들을 겪지 않을 시애틀의 독특한 문제이기는 하다. 반면 겨울이 되면 정말 집 안의 공기가 참을 수없이 차가워진다. 거의 밖에서 자는건가 싶을 때도 있는데 바닥 난방이 아니라 히터를 틀어야 된다는 점이 너무나 좌절스럽다. 안 그래도 건성인 내 피부는 가뭄이 난 것처럼 갈라지고 히터 소리에 스트레스 받고 끄면 바로 추워지니... 한국의 온돌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다.
그리고 이건 미국에서의 내 생활을 가장 크게 다르게 만드는 부분인데, 의식주 어디에 넣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마무리 단락에 넣어본다. 미국과 한국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들이 사는 모양과 지향점이 얼마나 다른가이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모양의 삶을 이상향으로 삼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다. 어떤 학교를 나왔다면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이런 회사에 다녀야 하고... 회사를 N년 다닌 사람이라면 얼마만큼 저금을 해야 하고, 나중에 결혼하면 신축 아파트 혹은 구축이더라도 리모델링이 된 카페 같이 깔끔한 20-30평대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고 애기를 낳으면 어떤 브랜드의 유모차를 끌어야 하고 등등. 미국이 물질주의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한국이 더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너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바라는 게 달라진다. 거기에다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국가의 시민이 아니고 엄청나게 큰 나라의 소수인종이 되며 내 인생의 축척이 바뀐 탓에,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한국에서처럼 가까이 보지 못하는 것도 한 몫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남의 인생에 대해 불필요하게 많이 알지 않아도 되어서, 내게 주어진 것과 내가 앞으로 할 선택들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는 미국의 삶이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