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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n Yeo Mar 06. 2024

친구와의 싸움, 일제강점기, 뉴진스

< 2년전 친구와의 싸움과 학창시절 배운 한국사>

1. 들어가며: 우리가 이긴 건가? 상대가 이건 건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친구와 싸웠다. 그 친구와의 싸움은 나와 친구라는 개인과 개인 대 싸움이라기보다는 나는 내가 소속한 집단을 대표해서,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친구가 소속한 단체 대표로서 싸움이었다.


 시간이 지난 뒤 각자의 단체에서 당시의 싸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찾아봤다. 우리 측에서는 이긴 싸움이라고 봤고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자화자찬을 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상대편이 진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자신들의 패배를 뼈아프게 생각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내 편견이었나 보다. 상대방 측에서도 자신들이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싸움에서 유리하게 흘러갔던 국면들을 회상하면서 자화자찬을 했던 것이다.



2. 역사는 기억의 편집이다: 장진호 전투, 신미양요


같은 사건을 두고서도 서로 기억을 선택하고 편집하는 방법이 다른 점을 생각하여 내린 결론이 있다.


역사, 기억, 기록과 같이 과거를 의미부여하는 방식은 현재 그 집단의 정체성, 이해관계, 가치관, 사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사례를 보아도 분명한데 예를 들어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로 평가받는 장진호 전투는 중국군에 의해서는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 미군 등을 저지하면서 전황을 바꾼 기념비적인 전투로 기억을 한다.


하지만 미군, 국군, 유엔군 측에서는 비록 험악한 환경 속에서  일보 후퇴를 하였지만 수많은 민간인들을 흥남에서 철수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전쟁 속에서도 소중한 인권의 가치를 수호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신미양요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외부 서양 세력의 개항 시로서 기억을 하지만 미국에 대한 반감을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기는 북한에서는 집단 정체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서로 생각과 이해관계가 달라 싸웠던 나와 친구 역시 같은 사건에 대해서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기억했기에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반대로 한 집단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잘 들여다보면 현재 그 집단의 정체성, 가치관, 이해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 그렇다면 학창시절에 배운 일제 강점기 파트를 떠올려보자


역사는 현재의 집단 내 구성원이 갖고 있는 사상에 따라서 과거를 편집하고 재구성한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한국사의 일제강점기를 분석해보자.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특히 일제강점기 시기 역사 파트에서 참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을 영토 범위로 정해진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가 기술하기보다는 만주, 연해주, 상하이와 같은 지금으로 치면 해외 영토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들을 기록한 것이었다.



4. 내가 생각한 한국사 교과서의 역할: 당대 사람의 생활 이해하기 그리고 오늘날에 미치는 영향 생각하기


내가 생각했을 때 한국사 교과서는 한반도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어떤 식의 생활을 하였고 어떠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구성하고 상징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를 충실하게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삼국시대 파트를 공부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활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 부분은 당시의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지에 대해서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한국사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한반도 주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단체 중에 하나가 조선총독부 혹은 친일 관료들일 텐데 이들에 대한 기술은 충실하지 못하고 왜 연해주, 만주 등의 항일 무장투쟁가를 중심으로 쓰였는지 의문이었다.





5. 물론 일제 강점기는 뼈 아픈 역사이다.


  물론 외부 세력에 의해서 한국이 점거당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에 점거하면서 해방 이후에도 일제의 영향력이 크게 남고 이를 유산 삼아서 대한민국의 사회 문화적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내 입장에선 현재 한국사 기술이 너무 아쉽다.


하다못해 한국어의 한자어 대부분 일본식 번역어인 점만 생각해도 일제 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하에 한반도에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어떤 식의 행정 조치를 했고, 이것이 한반도 주민들과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오늘날에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중심으로 사회라는 것이 보다 풍요로운 역사 사회 문화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일제강점기 시기에 한반도에서의 조선총독부의 정책들, 그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에 저항을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 타협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본에 대항하며 한반도 주민의 정체성이 발현하기도 하는 과정을 반영해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만족 상하이 연애주 등을 중심의 항일 무장 투쟁 중심의 한국사 기술을 이러한 논의의 기회를 박탈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며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 속 일제강점기 서술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5. 대한민국은 일제에 저항하며 독립하여 건국됐다는 역사관


이런 의문을 친구에게 공유했더니 친구는 현재의 한국사 서술은 특정한 하나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여졌기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 가치관이란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하며 세워졌다는 관점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가 설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를 서술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관, 이념,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한국의 독립에 영향을 미친 항일 무장 투쟁을 중심으로 한국사 서술이 쓰여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령 항일 무장 투쟁이 대한민국의 현재 영토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해도 당시 한반도는 일제에 점령이 되었기에 외국에서 벌어진 해외 무장 투쟁을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얘기를 들었다.


6. 나가며: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과거 기록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의 일제강점기도 사실은 '대한민국은 항일 운동을 통해 독립하여 건국된 국가로 보는 국가관 및 이념'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렇기에 역사라는 것이 정말 있는 그대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가치관에 의해서 취사 선택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7. 더하며: 학창시절의 음악 시간에 배운 음악사는 어떤 사관에 근거했을까?



a.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식의 음악사?


음악교육과를 다니는 나는 음악사를 배우면서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당연하게 배웠던 음악사가 사실은 특정한 이념에 의해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작곡가 중심주의, 지역 중심주의, 시대 중심주의, 작품 중심주의이다.


음악을 공부할 때 특정 작곡가의 이름을 외우고 그 사람의 국적과 대표작, 그 작곡과가 소속된 시대 등을 공부하는 게 과연 당연한가라는 질문이 나는 당황스러웠다.


바로크 시대- 독일 ,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고전 시대 - 오스트리아, 베토벤 - 교향곡 9번

낭만 시대 - 폴란드 - 쇼팽 -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음악에 있어서 작곡가 못지않게 연주자도 중요하고 감상자도 중요하다. 250도 중요하지만 뉴진스도 중요하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오늘날엔 250보다 뉴진스를 더 기억하는 걸 보면 작곡가보다 실제 음악을 공연하는 사람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은데 왜 클래식 음악사엔 작곡가의 이름은 수없이 많지만 연주자의 이름은 거의 없는가?


 뿐만 아니라 음악의 의미라는 것은 꼭 악보로 나타나는 작품의 형태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같은 작품을 연주해도 그 공연장에 누가 관객이냐, 어디서 연주하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구성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이 바그너 오페라의 주인공이 결혼을 한 장면으로서 공연을 하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결혼식장에서 예식장 배경 음악으로 쓰이는지는 전혀 다르다.


이런 차이를 역너무 하나로 뭉뚱그려서 음악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의 질문을 들으며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음악 시간에 배우는 음악사 역시 사실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게 아니라 특정한 이념, 사상에 따라서 취사 선택된 것이구나라는 생각하며 뿌리 깊은 작곡가, 작품, 국적 중심주의를 반성적으로 성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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