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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원 Jiwon Kim Jan 19. 2024

사랑은, 움직여도 되는 거야?

환승 그리고 불륜

─ 어떻게 그런 남자한테 오케이를 할 수 있어?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대뜸 걸려 온 Z의 전화에 속이 바짝 타는 마음이 들어 나답지 않은 훈수를 두었다. 평소 나는 친구들의 연애 고민에 시쳇말로 ‘네가 선택한 남자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는 관조적인 태도를 견지하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원래 만나던 여자친구에게서 Z에게로 소위 ‘환승’을 해 온 것이었다.


 Z는 내게 전화하기 두어 주 전인 3월 14일, 함께 입사한 그 남자로부터 화이트데이 명목으로 초콜릿을 받았다고 했다. 힙한 동네에서 사 온 게 분명한,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 상자를 건넸다는 거였다. 그리고 사실 자기한테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조만간 정리를 하고 올 테니 받아달라는 말을 했다고. 그러고는 실제로 삼 년간 만나던 여자친구를 정리하고 와서 Z와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 네가 좋아서 이번만 그러는 거라는 말을 믿어? 어떻게 3년 사귄 여자친구한테 그럴 수 있어? 너한텐 나중에 안 그런다는 보장이 있냐구.


 Z 자신도 입사하자마자 시작하게 된 연애인 데다 본인의 적확한 표현대로 ‘환승남’과의 연애라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왕 벌어진 일인데 물리라 할 수도 없고, 자기합리화나 도와줄까 싶기도 했지만 애초에 마음에도 없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성미도 아니었다. Z에게 한참 잔소리를 늘어놓고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는데 문득, ‘내가 도덕주의자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드라마 속 연인들은 “왠지 당신과는 더 이상 잘될 것 같지 않아요”라는 말과 함께 헤어지고, 한국 드라마 속 연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은 잘못됐어.”라는 말을 하면서 헤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반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사랑이란 순수한 것이고 한 사람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당신은 타인에게 한눈을 팔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도덕적으로 틀렸고 그래서 나는 당신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식의 대사를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연애 상대방에게 “사랑이란 무릇 이런 것이지”라는 당위적 정의(定義)를 설파하고, 상대방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正義)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고 따진다. 도덕지향적인 나라인 한국에서는 정치판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가장 사적인 관계인 연인관계에서든 누가 도덕적 주체성을 장악할 수 있는가를 놓고서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는 것이다*.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한창 Z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할 때쯤 유부남 감독이 여배우와 바람이 났다는 기사가 났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일”이라며 수백 마디를 보탰다. 당시 스물한 살이던 내가 Z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내게서 마음이 떠나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고 하면 마음이 바뀌었는데 어쩌겠냐고, 그를 원망하기보다는 그저 체념할 것 같다고. 사람이 살면서 한 사람만 좋아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법적인 책임이나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마음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냐고.


 글쎄, ‘낭만적 사랑’은 사실 18세기의 발명품이라고들 한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대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견딜 만하기 때문에, 각자의 재산과 가정이 적당하기 때문에, 와 같은 무미건조한 이유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결혼의 단 한 가지 이유로 내세워지기 시작하면서, 결혼이 하나의 ‘제도’에서 ‘감정의 신성화’ 경지로 승격되면서 감정 기반의 결혼관이 보편화된 것이란다.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인 것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불륜남에게 고개를 끄덕이던 내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은 상대방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을 도덕의 문제로 환원하며 환승남을 평가하고, 그에게서 환승을 당한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의 안위까지 사서 걱정하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열을 내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은 도덕주의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격화가 빚어낸 결과물일까.


 “사랑은, 움직여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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