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원 Jiwon Kim Jan 31. 2024

너라도 가볍게

자기 집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한 변호사

수험기간에 잘 만나지 못하던 친구를, 변호사가 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만났다. 회사의 동료 변호사님과 회사 밖에 만났던 날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했었는데, 친구가 그걸 보고 메시지를 보내온 게 계기가 되었다. 못 본 새 나처럼 학생에서 직장인이 된 친구는, 회사생활에서 사람이 제일 중요한데 그래도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은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힘이 들어서, 구제책을 알아보다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제도를 이용해볼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주변에 같은 문제로 퇴사한 친구가 있어 상담도 해봤다고 했다.


마침 내가 변호사로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수행하고 있던 때였다. 세 건째였다. 사실 친구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비롯한 인사·노무 이슈를 조금은 납작하고 덤덤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관련인 진술서나 노무사 의견서 같은 자료들은 아무래도 피해자의 울분 섞인 하소연에 비해서는 정제된 투로 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친구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서야 피해자의 고통이 더 생생하게 와닿기 시작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얼굴을 보자고 했다. 오랜만에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한 친구를 직접 만나 위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리 잡아둔 약속 날짜는 금방 다가왔는데, 친구는 만나자마자 약속을 잡았던 날부터 만난 날 사이에 회사에서 새로 겪은 일들을 말해주었다. 내게는 짧게 느껴졌던 기간이었는데, 힘든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친구는 자기가 20대 후반이나 되었음에도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자기가 왜 이렇게 힘이 없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친구의 눈물 섞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상하게도 내가 위로를 받는 지점이 있었다. 내가 얼마 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했던 생각이 친구의 것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이사를 나오면서 원래 있던 방 보증금 수천 만원을 돌려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임대인은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할 계약 만료일까지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내게 내어줄 돈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보증금 반환일 이틀 전에 임대인에게 일정을 상기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미리 문자를 보냈더니 글쎄, 임대인 아저씨는 온갖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바로 돌려주지 못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임대인에게 곧장 항의를 했지만, 내 말을 들어볼 생각도 없이 아무 말이나 우겨대는 사람을 앞에 두고 돈을 받아낼 방법은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사실관계나 적용법리나 죄 간명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요건사실에 해당하지도 않는 사실들을 들먹이며 시간을 끄는 술수에 나는 금방 지쳐갔다.


바로 그때, 나도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20대 후반이 되었고, 심지어 법적 권리·의무에 대해 몇 년을 공부해서 변호사로서 밥벌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내 권리 하나 지키지 못하다니. 무력감이 밀려왔고, 나도 혼자 눈물을 찔끔거렸다.


우리 세대는 어떤 문제에 당면했을 때 스스로를 탓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눈물을 닦아내는 친구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장 먼저 그 글이 떠올랐고, 그 다음으로는 친구가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땅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법과 제도의 미비라는 문제고,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실제로 그에 따른 구제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건 법과 제도의 실효성 문제다. 법의 보호 밖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맞붙는 상황에서라면야, 우리가 20대 후반이 되었다고 별 수 있겠는가. 20대 후반이라고 해봤자 회사에서는 겨우 말단에 있는 사회 초년생일 뿐인데, 사회에서는 그저 찍어누르기 좋은 어린애일 뿐인데. 그런 우리가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건 오히려 어렵고 힘겨운 일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내 상황은 친구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법적인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없다는 점은 같았다. 아무리 사실관계와 적용법리가 명확하고 그에 따라 내게 언제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지만서도, 상대방이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나로서는 더 이상 손을 쓸래야 쓸 수 없다.


다른 변호사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i) 자신도 이전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새집 집주인에게 당장에 전세금을 납부할 수 없어 입주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새집의 전 임차인이 전세금에 대해 내고 있는 대출이자를 자신이 부담하게 된 일 (ii) 소모품인 벽지의 교체비를 보증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해서 실랑이를 하다가 법대로 하자며 윽박을 지르기에 자신이 변호사라고 말했더니 근무하는 법무법인이 어디냐며 당장 찾아가겠다고 소리를 지른 일을 말해주길래 큰 위로가 되었다. 세상만사가 법대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는 것과 실제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꼭 같이 가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여실히 느꼈다. 내가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더욱 뚜렷해졌다.




친구와 대화를 하며 앉은 자리에서 이런 생각이 들어 바로 자기 탓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와다다 쏟아내었다. 그러면서 사람과의 공연한 마찰이 빚어질 때는 그 판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 사람이 짜놓은 판에 발을 들여버리면 그 사람한테 유리한 게임의 규칙대로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도 말해주었다.


하지만 말을 꺼내자마자 나부터가 막상 돈을 쥐고 있는 아저씨한테서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다가 아저씨가 짜놓은 판에 제발로 걸어들어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아저씨에게 휘둘리고 있는 내 자신을 탓하는 일까지 깨끗하게 완수해버렸으니, 친구에게 늘어놓은 말의 반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다.


뭐, 이미 해버린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는 걸. 씩씩한 척을 하며 친구를 위로하는 일 말고는 내가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디 친구도 그 말을 떠올리며 나를 이해해주길, 그리고 친구라도 내 말을 실천으로 옮겨 마음의 작은 안정을 찾을 수 있길.


그날 친구는 고맙게도 선물을 양손에 들고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내게 선물을 안겨주고 떠나는 양손과 양어깨가 한결 가벼워보였다. 양손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음 한 켠도 조금이나마 가벼워졌기를 바라면서, 친구가 버스 타는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2023년 가을에 쓰다)




* 이 글을 쓴 뒤 나는 보증금을 돌려 받았고(물론 임대인의 일방적 주장으로, 나는 미리 법적 요건에 따른 통보를 했음에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공실로 있던 기간 중 일부 월세를 공제하고서 말이다……) 친구는 해가 바뀌면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인생이 육각형인’ 친구가 사준 아인슈페너.


당시 친구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친구의 마지막 인사에 들은 체도 않고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고. 이직 한 달 만에 '지금 내 인생은 육각형이야'라며 싱글벙글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놓인다. 힘든 일이 있어도 이렇게 지나간다. 그렇게 서른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