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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Jissay

첫 5km 마라톤 대회 회고

by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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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흡연자였다.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매 순간마다 담배와 함께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담배가 있었고 삶 그 자체였다. 술자리가 없는 날에는 1갑 ~ 1갑 반, 술로 하루를 끝마치는 날에는 2갑 가까이 피웠었다. 금연 초기에는 과거 흡연 습관을 떳떳이 얘기할 수 없었다. 언제 다시 흡연자로 돌아갈지 알 수 없었고,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삶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에 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더 이상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기록하기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금연을 다짐했던 작년 9월. 달리기와 인연이 없었던 나였지만 만약 금연에 성공한다면 평생 금연을 위해 풀코스 마라톤 완주 목표를 세웠었다. 당연히 실패할 줄 알았던 금연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세웠던 목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비장한 각오와 다짐으로 시작한 금연은 외출을 자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주변 환경과 일상 루틴 자체를 변화시켰고 끝내 성공하였다. 담배연기의 구수한 향은 호기심에 피웠던 그 시절의 역한 향으로 바뀌었다. 금연을 통해 성찰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나를 찾아냈다. 더 이상 담배를 찾지 않는 내 모습이 때로는 새로운 자아가 형성된 것만큼 낯설지만,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금연으로 배운 인내와 같은 팀 멤버분들의 선한 영향력. 문득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떠올랐다. 흡연자에서 비흡연자로. 이를 평생 이어가기 위한 풀코스 마라톤 완주 목표의 실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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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집 근처 돼지갈비 집을 가면 밑반찬으로 항상 양념 게장이 나왔었다. 먹어보라며 건네는 부모님께 저걸 어떻게 먹냐며 손사래 쳤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되었다. 양념 게장을 정말 좋아하지만 생새우를 회처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양념 게장의 맛을 기억하고 있기에, 생새우의 맛과 식감도 게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이 간다. 게장도, 생새우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입속에 집어넣는 것 자체를 신기해한다. 이렇듯 간접경험은 삶에서 중요하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의 크기는 직접 해봐야 안다. 살아보니 직접 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직접 해보지 않거나 유사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자 나의 어리석음을 표출하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9월 초 같은 팀 멤버분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묘한 기운에 이끌려 근처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이 당시만 해도 풀코스 완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뒤 달리는 법을 잊은듯한 다리 근육이 왜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냐며 나를 혼내는 것 만 같았다. 오랜 기간 흡연 습관으로 망가진 폐활량과 운동 부족으로 인해 1분을 뛰는 것조차 나에겐 도전으로 다가왔다. 달리기 주법, 1km 평균 페이스가 문제가 아니라 뛰기 위한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던 시기였다.


매일 아침 달리기 위해 공원으로 가야 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매일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며 첫 3km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인지 '고통스럽다' 표현 외에 말할 것이 없다. 마지막 1km 지점을 앞두고 '대체 이걸 왜 할까'라는 생각과,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져 내 두발을 멈추게만 하고 싶었다. 마지막 1km를 남겨두고 걷자니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달려온 거리가 아깝고, 계속 뛰자니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다. 3km를 뛰어보니 42.195km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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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30~40분 달리기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달리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 하루 달리기가 끝나는 35분대 시간부터 오히려 힘이 샘솟는 듯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러너스 하이였다. 달릴수록 상쾌해지는 러너스 하이. 보통 1분에 120회 이상의 심장박동수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참 묘한 기분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이 상태가 되면 하체 부분의 감각이 거의 없어지고 누군가 내 발을 대신 움직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평소에 해왔던 근심과 걱정들이 무엇인지 조차 잊게 된다.


이때 잠시 상상에 빠지기도 하는데,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뛰는 모습을 보러 왔고 조금만 더 뛰면 완주가 눈 앞이라는 상상. 정말 취득하고 싶었던 자격증의 합격 결과에 내 이름이 있을 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 묘한 기운. 매일 아침 달리기를 즐기다 보니 러너스 하이를 느꼈고, 달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오래가지 못했고 3주가량 뛸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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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재미를 알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무릎 부상. 참고 달릴 수 있는 고통이 아닌, 달릴 수 없는 고통이었다. 걸을 때는 괜찮았지만 체중을 실어 달리는 순간 송곳이 뼈를 깍아내리는 듯하였다. 첫 마라톤 대회도 내년으로 미뤄지는 듯했다. 금연 후유증으로 급격히 불어난 체중과 운동량 부족이 원인이었다. 러너스 하이를 느낀 채 매일 달려왔지만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비록 달릴 수는 없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기에 매일 아침 걷기를 반복하며 상태를 체크했다. 27년 살아오며 뛰지 못했던 순간은 없었기에 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 기간에 삶에 대한 가치관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건강이 우선인 삶. 지금껏 건강이 늘 최고라 말했지만 몸이 망가질 때까지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삶의 전반전에 중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망가지고 나서야 돌보기 시작한다. 27년간 아무 탈 없이 잘 달려왔고 항상 달릴 수 있었던 무릎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릴 수 없게 되자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완쾌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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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간의 재활 훈련이 끝나고 2020 경기 국제 하프마라톤 VIRTUAL RUN 대회 접수와 함께 본격적인 기록 단축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시작하는 5km 달리기. 달리기 자세, 주법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내 몸에 적합한 리듬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주었다.


직장인 신분으로 매일 아침 달리기 위해선, 일상 루틴에 변화가 필요했다. 최소 저녁 10시에는 침대에 누워야 아침 6시에는 기상하여 오전 운동 진행이 가능했다. 특히 수면 시간이 부족할 경우 다음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컨디션 조절이 필수였다.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매일 달려왔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 5km를 뛰어야 시작되는 하루. 누군가 대신 뛰어줄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내가 시작한 달리기는 내가 끝내야만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어제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며 달려야 했다. 지루하고 외로운 싸움을 매일 이겨내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알아줄 이유도 없는 혼자만의 달리기를 통해 매일 해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었다.


55일간 재활 걷기 포함 31시간 263km 달렸고 오늘 아침 첫 대회를 450 페이스로 마치게 되었다. 첫 대회 목표인 430 페이스 달성은 12월로 미뤄졌지만 같은 시간, 노력을 해왔던 순간들이 값지고 소중했다.


돌이켜보면 금연과 7월부터 시작한 맨몸 운동을 제외하고 무언가를 이렇게나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노력 없이 결과만 나타나길 바랬다. 이루지 못한 목표의 원인을 내가 아닌 외부의 문제로 판단했다. 매일 달리다 보면 깨닫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무언가 잘 안 되는 원인이 외부에 있을지라도 선택과 결정의 몫은 항상 나라는 것. 태도와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삶에서 없다는 것. 달리기를 통해 삶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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