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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앤느 Dec 28. 2020

에펠도 나를 위해 불을 밝힌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보이는 빨간 벽돌집

2층 난간에 기대어 서서

고개를 내밀고는 어디쯤 오나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얼굴

그 얼굴이 보이면 그렇게 위로가 됐더랬다.

시험을 망친 날도, 친구와 다툰 날도,

저 멀리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면

괜시리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곤 했더랬다.



지금은 남편인 이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슨 일 때문인지 많이 힘들어하던 나를 위해

남자 친구는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를 기쁘게 하겠다고 쪼그리고 앉아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은

그 모든 어려운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 버릴 만큼이나 따뜻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겨울,

프랑스어를 못 하면서 처음 프랑스에 와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바둥바둥

애를 썼던 어느 날이었다.

서른도 넘긴 나이에

초등학생만큼도 말할 수 없는 처지로

후욱 떨어진 상황이 답답하고

그런 스스로가 초라해서

유독 힘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지하철을 내려 터들 터들 집으로 걸어가던 중에

때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처량해

내 마음도 처량해 한 없이 느려지던 걸음

추운 게 마음인지 몸인지

옷깃을 여미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았더니

저 멀리 에펠탑이 밝게 불을 밝히고 있다.


때마침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한 작은 이벤트처럼

불을 번쩍인다.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얼굴이

나를 위해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남자 친구의 뒷모습이

에펠의 불빛 속에 비친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나를 위해 속삭이듯

끝도 없이 켜졌다 꺼졌다


아름답게 춤을 추는 불빛을 바라보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번

나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나를 위로하시는

그분의 작은 사랑을 느낀다.


삶은 해석이라는데

에펠도 나를 위해 불을 밝힌다 말하며

나는 또 한 번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낯설고 어색한 프랑스 땅 그 어디에 숨은

환대를 기어이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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