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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Apr 10. 2024

심리적 외상을 돌보는 법

어렸던 나와의 대화 

대학생 때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람을 탐구하고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학문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의 병도 스스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동기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섣부른 선택이었던 걸까. 나는 수업 도중 뛰쳐나와 화장실에서 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자꾸만 과제로 내 경험들을 얘기하레리포트를 제출해야 했었다. 리포트를 쓰며 자주 울었던 것 같다.


한 번은 트라우마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심리적 외상을 말하는 트라우마는, 두고두고 돌보고 아껴주고 흉터관리도 해줘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트라우마는 마치 인생이라는 책에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인생을 살며 한 장 한 장 넘기다가도, 그 경험과 관련된 트리거가 나오면 책갈피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때의 생생한 경험을 하게 되고, 다시 그 인생이라는 책에서 책갈피를 끼운 부분만 읽어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자꾸 과거에 읽었던 부분을 들춰내는 일이라 책을 읽는 속도도 더뎌지는 거라고.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나는 밤마다 우는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의 불안함과 무서움은 그냥 해가 지면 나타나는 것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운다고 아빠에게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다. 아마 어린아이의 구체적이지 않은 우울감과 불안감이 우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어쨌든 나는 계속 밤이 되면 우는 아이였는데, 하루는 엄마아빠가 내가 우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다. 나를 어두운 방 베란다에 가둬두었다. 나는 열어달라고 고래고래 울며 소리 질렀지만 엄마는 매를 들고 문 앞을 지켰다. "울음 그치면 열어줄 거야. 너는 그때까지 못 나와." 어렸던 나는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숨이 헐떡거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져도 계속 계속 소매로 닦아내고 숨을 참아가며 울음을 삼켰다.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는 경험을 해야 내담자(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의 트라우마도 돌봐줄 수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때 생각이 나니까 나는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났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화장실로 뛰어가 한참을 있었다. 동기들이 나보고 무슨 일 있냐고 카톡을 보냈지만 애써 변비라고 둘러대고 나왔다.


수업을 가까스로 마치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누워서 하염없이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내가 눈을 감고 했던 것은, 이후의 내 삶을 조금 바꿔놓았다. 어린 여섯 살의 나를 꼭 안아주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추운 베란다에 내복바람으로 울고 있던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괜찮아, 괜찮아. 엄마아빠는 서툴렀고, 너는 어린것뿐이었어. 어른이 된 너는 제법 멋진 사람으로 자라. 대학도 가고 알바도 하면서 용돈도 벌어. 애인도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사귀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 일이 있고 조금 성장했다. 어린 시절의 수많은 트라우마들을 떠올리며 힘들 때마다, 어렸던 나를 안아주는 방법으로 나를 위로했다.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 하나 생긴 것이다. 너무 작고 소중한 여섯 살, 또는 다른 트라우마에 머물러 있는 열몇 살의 나를 꼭 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럼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고맙다고 말할 것 같았다. 


어린 나에게 꼭 한마디만 해야 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고마워, 버텨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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