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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Jul 01. 2024

마음 산책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괜스레 우울해진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나는, 산책도 하지 못하니까 더 우울해진다. 비가 주룩주룩 많이도 내렸다. 이런 날은 어떻게 해야 하지? 우울했다. 아, 어떡해야 하지.


문득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냥 나가면 어떨까. 산책을 나가자 평소에 하듯. 뭔가에 이끌리듯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웠다. 그냥 나도 우산 없이 나갈 채비를 했다. 우울한 와중에 마음에 환기를 시켜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고리 앞에서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이게 맞는걸까? 하지만 산책에 잔뜩 기대하고 있는 강아지를 보니 안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무작정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었다. 빗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또 고민했다. 이게 맞아?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비가 주룩주룩 왔다. 생각보다 꽤 많이도 오는것 같아서 또 고민했다. 강아지도 비오는날 산책은 처음이다보니 아파트 처마 밑에서 머뭇거렸다. 아가, 엄마를 믿어보렴. 하는 마음에 그냥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강아지도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냥 빗속을 헤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뛰고싶으면 뛰었고, 걷고싶음 걷다가, 어딘가 쉬고싶으면 잠깐 쉬다 갔다. 다 젖은 길바닥 모퉁이에 앉아있다가, 다시 또 뛰었다. 나도모르게 웃음이 났다. 집에서 우울해있던 나는 가고, 또 새로운 내가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어머, 비가 많이 오는데... 하며 우리를 걱정했다.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그러게요, 하고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비가 정말로 제일 많이왔다. 달콤아, 뛰자! 라고 하자 강아지가 뛰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를 뒤따라 뛰었다.


집에 들어오자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강아지는 귀까지 다 젖어있었고, 우리 둘에게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로 신발장이 젖었다. 우하하 웃음이 났다. 우리 얼른 씻어야겠다, 그치? 하고 말했다.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봤다. 우리는 얼른 샤워를 했다. 강아지가 감기에 걸릴까 발가락 털까지 바짝 말려주었다.


아침에 그렇게 뛰어다니니 잠이 솔솔 왔다. 나랑 강아지는 그렇게 단잠에 빠졌다.


이 경험이 나에게는 정말 생경하고 생생했던 것이었다. 넘어졌던 마음이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던건, 강아지도 나도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문고리를 돌리기 전, 고민하고 있을 때.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보던 눈, 잔뜩 산책을 기대하던 마음으로 나는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가 비 앞에서 머뭇거릴때 엄마를 믿어봐. 하면서 나갔던 나의 마음 때문에 강아지도 빗속을 뚫고 앞으로 뛸 수 있었다.


산책과 샤워가 끝나고 우리가 동시에 단잠에 빠졌던 것 또한 우리가 서로를 믿었고, 넘어졌던 마음을 서로가 일으켜줬기에 마음편히 잠들 수 있었던 것이다. 비가 그치자 나무가 푸르고 지상 지하철이 시끄럽게 다니고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아지는 나의 넘어졌던 마음을 일으켜주었고, 망설이던 강아지의 마음에 내가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던 경험이 나에게 오래오래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행복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일상 속 아주 가끔 있는 이런 일이,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다시 또 넘어지고, 아프고, 날 돌보지 못할 때 이 기억을 떠올리면 어떨까.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푸르던 여름을 기억해보자. 추억은 해질녘의 노을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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