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나에게 미쳤다고 했을지 모른다. 아니, 나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역시 죽어야 하나.
미쳤다는 표현은 누군가가 상식 밖의 행동을 했을 때 쓰는 말 같다. 아니면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하거나 할 때 비하적으로 이르는 말 같다. 아니면 정신질환자를 격하시켜 이르는 말 같다. 나는 그 표현이 맘에 와서 박혔다. 내가 미친 사람인가? 나는 그 단어를 전복시켜 나에게 쓰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라고 해야 할까.
응 나 미친 여자야, 왜?
우리 학교 상담심리학과 석사과정은 졸업 요건 중에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 경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았다. 내 증상을 얘기했더니 상담심리사 1급 준비 레지던트 과정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처음 접수면접 때(처음 상담을 신청할 때 하는 접수용 면담 혹은 상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더니 목 아래 가슴 가운 데게가 빨개졌다.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상담사가 가슴께가 빨개질 정도로 누르시네요.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공황장애가 있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는 것이 미칠 듯이 힘들었고 불안하니 점차 예민해져 갔다. 가슴이 뭔가로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첫 상담에서 5회를 받고 나는 도망쳤다. 자꾸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상담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의문이 들었다. 왜 자꾸 내 과거를 캐내는 거지? 들춰봤자 좋을 것이 없는 성장과정을 왜 자꾸 물어보는 거지? 난 앞으로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엄마에 대해서는 왜 물어보는 거지? 아빠에 대해서 얘기하긴 더 싫은데 아빠에 대해선 왜 말해야 하는 거지? 가족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데 왜 자꾸 물어보시는 걸까.
졸업 요건은 상담을 10회 받는 것이었지만, 중간에 내가 도망치는 바람에 선생님을 바꿔서 더 받으려고 했다. 졸업은 해야 했으니.... 그러나 그 말을 할 자신이 없어 계속 도망 다녔다. 교정의 화장실을 이용하던 도중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어머, 달콤님 왜 상담에 안 오세요?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치기엔 나는 거짓말하는데 서툰 사람이었다. 그러자 의외로 선생님은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그럼 그걸 저한테 얘기하시지, 하셨다.
말해도 되는 거였나? 내가 원하는걸 제대로 말하는 법을 잘 몰랐던 때라, 그냥 침묵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라서. 아니 정확히는 상담 장면에서 나보다 손윗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해도 되는지를 몰랐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어쨌든 상담은 5회 더 진행되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고, 불편했던 것들을 얘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랬으면 저한테 말씀해주셔도 된다, 얼마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수용받는 기분을 느꼈다. 인정받는 느낌을 느꼈다. 이래도 되는 거였나? 내 쓸데없는 의견이 수용되다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었고 심사숙고하시더니 나머지 다섯 번의 상담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고민해 보자고 하셨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머지 5회의 상담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지막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를 헤매다가, 노를 하나 획득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저어갈 방향은 모르겠지만, 내가 탄 배가 통통배인지, 나뭇 가진 지도 모르겠지만, 물을 저어갈 노를 하나 저에게 주신 것 같다고.
선생님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10회의 상담을 마쳤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상담이 종료됐다. 첫 상담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수용받고 인정받는 기분을 느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