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삶이 뭐였더라. 생각도 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아니,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걸 지도 모르겠다. 꿈꾸고 있던 삶은 있었는데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서 10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장난으로 썼던 그 편지를 28살 때 정말로 받게 되었다. 나는 국어국문과 교수가 되려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거라고 했다. 아마 곧 졸업하고 돈을 벌다 유학을 가겠지, 하는 내용이었다.
정말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교수의 길은 험난했고 석사까지만 했는데도 너무 지치고 힘이 들었다. 박사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자격증을 따려다가도 의지가 부족해서 따지 못했다. 어떤 자격증은 땄지만 커리어에 중요한 자격증 중 하나를 따지 못했다. 속상했다. 지금 난 왜 이렇게 초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삶은 초라할까? 누군가는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을 꿈꾼다. 나는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됐다. 남편과 강아지와 함께 오순도순 평탄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에 5시간 정도 일하고,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급여를 받는다. 괜찮다. 이 정도면 누군가 꿈꾸는 삶일지 모른다. 내가 꿈꾸던 이상향에 멀어졌을 뿐, 나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내가 꿈꾸던 삶이란 건 정말 거창했던 것 같다. 이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저 꿈은 꿈으로만 남겼어야 했을까? 아무 욕심 없이 그저 지금의 삶에 안주하며 살아야 할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다. 나는 사실 정말로 박사과정을 한 뒤에 연구실적을 쌓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어느 학교라도 좋았다. 누군갈 가르치고 학문에 매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책 한 권 읽을 여유도 없이 글 한 줄 쓸 여유도 없이 살고 있지만, 그랬다.
요즈음의 나를 돌아본다. 약을 먹으면 졸려서 잠을 많이 잔다. 최근 공황장애 증상도 보이고 있어 약을 증량했다. 아침 시간을 활용할 수가 없다. 아침엔 거의 좀비처럼 깨어있고, 억지로 안 자려고 노력한다. 기타 연습을 할 때도 있지만 성과가 좋진 않다. 아침에 책을 펴면 몇 줄 읽지도 못하고 잠에 빠진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대고 다음날 편두통이 찾아와서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몸과 정신이 왜 이렇게 아픈 것일까. 직장생활을 오래 할 수가 없다. 9-6 일을 할 때는 자주 아프다고 잘린 적도 있다. 오후가 되면 점심을 먹고 출근을 준비한다. 오후부터 일을 하기 때문에 그쯤이면 정신이 겨우 든다.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정신과 약, 신경과 약을 먹으며 증상에 시달리는 삶을 사는 게 아니었는데.
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얼마 전에 글쓰기 레슨을 받았다. 과거의 내 글, 그리고 과거의 내 모습을 사랑할 줄 알아야 앞으로의 글도 내 삶도 발전될 것이라는 말씀을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내 과거를 어여삐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난 지금의 내 모습과 과거의 내 모습을 어여삐 여기고 있을까? 과거에 '꿈꾸던 삶'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현재를 안아주고 싶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약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있는 것도, 일의 시간을 줄여 그나마의 돈을 벌고 있는 것도, 강아지 산책을 매일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남편과 사랑하고 살고 있는 것도. 나 자신을 충분히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의 과거도, 나의 현재도, 나의 미래도 모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지금을 안아주려 노력하자.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