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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Sep 14. 2024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야무진 당일치기 여행

여행객에게 "언제가 여행하기 좋아요?"라고 물으신다면, 아마 "한여름 빼고 다요?"라고 답할 것이다. 겨울은 눈이 와서 아름답고, 가을은 단풍이 져서 예쁘다. 초봄은 살짝 돋아난 연두들을 찾으러 다니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사실 그간 찍은 사진들을 쫘악 보면 한여름에 찍은 사진이 가장 청량하고 쨍하고 이쁘다. 하지만 한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다. 지쳐서 탈이 날 때가 많다.



그래서 지금, 이 더위에, 살짝 시원했던 지난 3월로 되돌아가보자!

때는 바야흐로 2024년 3월 말. 날이 따뜻해 질랑 말랑 할 때였다.



오늘도 기상 시간은 새벽 6시. 씻고 앉아서 고투어씨를 살핀다. 이 불친절한 기획자는 도착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뭘 할지는 이 기획자의 의상에 달려있다. 오늘은 등산이군!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등산복을 꺼내 입는 걸 보니.



서울서 출발해 네 시간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청송. 어느 식당 앞이다. 여기 식당들은 식사한 손님이 등산할 동안 주차장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점심 밥상은 더덕구이 정식. 사장님이 방글방글 웃으며 맞이해 주시는 것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여긴 무조건 맛있을 듯! 아니나 다를까, 반찬이 정갈하고 생선은 고급지고 간은 딱 맞다. 식사 대만족이다.



게다가 식당 한편을 보니 식물을 너무나 이쁘게 잘 키우고 계신다. 착하신 분들임에 틀림없다. 주왕산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는데, 그 명맥을 지켜오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하셨을까.






부처님 손바닥 모양의 기암, 주왕산의 대표 봉이다


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이제 등산이다. 한국인이 가봐야 할 관광지 100곳 중 5번째라는 주왕산을 이제야 와 보다니. 날이 좋았으면 참 좋을 텐데, 춥고 비가 후드득 온다. 보고 싶었던 벚꽃은 없지만, 관광지에 의례히 있는 기념품 가게들이 독특해 보는 맛이 쏠쏠하다. 그렇게 구경하며 슬금슬금 오르다 보니 짠하고 나타난 부처님 손바닥.



"우리 저기까지 가는 거야?"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생긴 저 봉의 이름은 "기암"이다. 우리는 그 앞을 지나서 용추폭포와 주왕암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곳 탐방로는 맨발 걷기 길이 운영 중이다. 신발 보관함과 발 씻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말인즉슨, 코스가 아주 쉽다는 뜻이다.







무너지지 마, 쓰러지지 마! 작은 응원들이 모여있다.


올라가는 길이 평탄하다 보니 재밌는 구경거리도 많이 있다. 가장 빈번하게 보이는 건, 돌 아래 괴어 놓은 나뭇가지들. 수차례의 화산폭발로 만들어졌다는 주왕산은 기암괴석들이 많고, 딱 봐도 하늘을 휙 날아서 떨어졌을 법한 거대 바위들이 계곡에 팍팍 박혀있다. 그러다 보니 위태위태하게 곧 굴러 떨어질 듯한 바위들도 눈에 띈다. 그런 바위들 아래는 어김없이 이 나뭇가지 지지대들이 있다. 무너지지 마, 쓰러지지 마, 사람들의 작은 응원들이 모여있다.






도깨비 눈코잎 뿔까지 완벽한 옆모습!



한참을 걷다가 머리에 뿔난 이 거대 바위를 만났다면, 긴장하시라! 이제 용추폭포에 다 왔다. 용이 승천한 웅덩이라는 용추협곡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어, 물소리도 어마무시하지만, 마치 외계의 어느 별에 온 듯, 색다른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진으로는 표현조차 안 되는 어마무시함을 동영상으로 담아보며, 혼자서 우와, 우와를 남발했다. 직접 가서 느껴보지 않는 한, 절대로 모를 신비로움과 자칫 잘못하면 저 물살에 휘몰아쳐 떨어져 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여기 까지라면 재미없지. 그다음 목적지는 주왕암이다. 이제부터는 산길을 올라야 한다. 전망대까지 올라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돌산을 바라본다. 다시 내려갔다가 또다시 올라가면 주왕암, 주왕굴이 있다.








여기서부터 계속 오르막길이라 땀범벅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주왕산이 주왕산이 이유는 바로 이 주왕굴 때문이다. 신라 때 중국의 주왕이 피신 와 머물렀다는 주왕굴.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지 싶을 정도로 산 깊은 곳,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굴이다. 대왕이 되고팠던 주왕은 재기를 꿈꾸며 이곳으로 숨어들어 피신했었다는데 결국 신라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주왕과 식솔들이 흘린 피는 주왕천으로 흘러 주변의 진달래를 물들여 수달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왕산에는 진달래에는 없는 붉은 점들이 있는 수달래가 핀단다.








주왕이 숨어 있었다는 동굴에서 소원을 빌면, 주왕이 평생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신다고 한다.



이곳이 주왕암이다. 산 중턱에 있어 철계단을 놓았다. 계단 자체가 높고 험준한 데다 끊임없이 물이 흘러 미끄럽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철계단이라도 있어 오르지만, 그 옛날 아무것도 없었을 때는 이 절벽을 어찌 올라 숨어있었을까. 숨은 자도, 찾아낸 자들도 용하다. 심지어 굴 옆으로 내려오는 폭포에 세수를 하다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데, 요리조리 아무리 봐도 세수를 할 각이 안 나온다. 그때 당시에는 물의 각도가 조금 달랐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야망을 품었던 자가 생을 마감한 곳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데, 여튼간에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주왕이 일생에 딱 하나의 소원은 들어주신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하지만 소심하게 소원 하나 빌어본다. 꼭 들어주세요 주왕님!





느린 여행객인 우리는 볼 거 다 보고, 쉴 것도 다 쉬었다. 주왕산에서는 꼬박 3시간을 있었다.








주산지에는 300년 된 버드나무들이 물속에 뿌리를 둔 채 자라고 있다


청송까지 왔는데 여기서 여행을 끝낼 수는 없지! 우리는 유명한 주산지로 간다. 주산지는 조선시대에 만든 인공 연못인데 가뭄이 와도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300년 정도 된 왕버들나무들의 서식지로 물속에 반쯤 잠겨있는 모습이 장관이기도 한 곳이다.









저 뒤로 벚꽃이 피려고 분홍 준비 중이다


주산지는 새벽 출사지로 유명하다. 이름만 검색해도 새벽 운무 사이로 몸체만 나와있는 왕버들나무의 신비로운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오후에 도착한 데다 비까지 뿌리고 있어 멋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대신 사람이 많지 않아 고요히 물멍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호수 주변에 앉을 수 있는 곳도 충분했고, 거대한 잉어들이 보란 듯 헤엄치고 있었으며, 수달들이 분주히 다니고 있어 고요히 멈춰있기 좋았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면 주산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살짝 오르막 길이다.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라, 호수의 일부만 개방하고 있다. 총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목련이 피기 시작했다


멀리 경상도까지 내려왔는데 청송만 보고 가기는 아쉽다. 청송서 안동까지는 운전해서 40분 정도다. '저녁 식사를 안동서 하지'하며 안동 하회 마을로 행선지를 정했다. 하회 마을 내에 있는 상점들은 모두 6시 이전에 문을 닫아, 우리는 마을 안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살살 걸어 다녀만 보았다. 낮에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이 빈 마을처럼 고요하다.  하회마을을 끼고 있는 물길 주변에 벚꽃이 천지로 피어 장관을 이룬다는데,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서울은 벚꽃이 펴 난리였을 때인데, 안동은 추웠는지 꽃몽우리도 생기지 않았더라. 지는 노을만 바라보다 나중에 또 오자 약속하고는 자리를 떴다.










신라시대 주왕과 300년 된 버드나무, 600년 된 하회마을. 시간여행을 제대로 하고 현생으로 되돌아왔더니 밤 10시다.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당일치기 여행, 오늘도 알찼다!





Tip. 오늘 여행지들은 길이 모두 평탄해 굳이 등산복이 필요 없다.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올라가는 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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