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대로 보인다, 유유자적
"카페는 몇 분 거리야?"
점심을 다 먹을 때쯤이면 의례히 물어야 한다. 표면상 화장실 이슈라고는 하지만, 사실 안 물어봐주면 또 예의가 아니니까. 비밀 투어라지만 적당한 관심은 필수다.
"가까워. 10분도 안 걸려. 편안한 곳일 거 같아."
"어떻게 알아?"
"이름이 그런 뜻이야. 조용하고 편안하고 한가롭고. 막 그런 뜻 가진 사자성어."
순간 기억이 안 났다. 아. 음. 뭐더라? 기다려봐! 나는 나의 잠재의식을 믿어. 기다려봐!! 잠깐!! 나 알아!!!
밥을 다 먹고 일어나야 할 때쯤 불현듯 떠올랐다!
"아! 유유자적!"
"빙고!"
그렇게 우리는 갔다. 유유자적으로.
요즘 고바리(스타)는 외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카페를 선호하는 듯하다. 이런 데를 어찌 알고 다들 오나.. 싶은 곳 말이다. 외길을 굽이굽이 들어간 곳에, 자그마한 건물이 있었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는데 보니, 정원이 있다.
"600평이래."
진짜? 사실 600평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그저 카페로 쓰는 건물과 집으로 쓰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 그리고 그 사이에 큰 정원이 있다는 것 밖에. 날이 시원하면 정원에 앉아도 좋으련만. 내리쬐는 햇살로 이미 30도가 훌쩍 넘은 오후다.
겉에서 보기엔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실내로 들어오니 한옥 느낌이다. 빗살이 있는 문과 자그마한 툇마루도 있다. 믹스 앤 매치, 퓨전 스타일인가. 좋은데?
게다가 이 카페 주종목이 티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 오케이. 하지만 커피와 티를 함께 내린 드립 커피라는 메뉴도 있다. 이거 끌리는데? 디저트는 양갱과 정과. 금귤 정과를 한번 먹어보자!
고바리가 주문한 브라우니는 살짝 실망이지만, 뭐 어떤가! 창 밖 풍경이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인 이곳에 앉아 책을 꺼내 든다. 책 한 장, 커피 한 모금, 풍경 한번 쓱. 책 한 장, 정과 하나 입에 쏙 넣고, 다시 풍경 한번 쓱.
두어 시간, 각자의 힐링 타임을 가진 후, 금귤청 에이드를 주문한다. 시원함과 청량함으로 에너지가 충전된다.
"잘 쉬었다. 이제 갈까? 오늘의 목적지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잘 쉬는 것도 여행의 목적이므로.
이야기가 여기까지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여느 때처럼, 블로그에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쓸 때였다. 장소를 첨부하려고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이상하다. 안 나온다. 뭐가 잘못된 거지? 아니, 내가 신용카드로 계산까지 했는데, 가게가 등록이 안 된 것도 아닐 테고. 뭐지? 왜 안 나오지? 그리고 알았다.
'유유자적'으로 알고 있었던 상호명은 <유유차적>이었다.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서 차를 판매하는 곳이란 뜻으로 지으셨겠지. 나는 "유유자적"이라는 매력적인 한자성어에 꽂혀 그 공간 안에 있으면서,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도, 장소 검색 직전까지 '유유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눈과 뇌는 보고 싶은 대로 본다더니, 믿었던 나의 잠재의식한테 당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