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수목원 황토메타길
"이 수목원은 한 가지만 보면 돼. 휙 한 바퀴 돌면 끝이야."
이틀 동안 세 개의 수목원을 돌 예정이었다. 약간 무리하나 싶은 스케줄이었는데, 나름 일리가 있었다. 점심 먹고, 한 군데 들러 휙 운동하고, 호텔 체크인해서 잠시 쉰 후, 두 번째 수목원의 야간 개장을 다녀온 후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잔다. 아침에 조식 먹고 천천히 준비해 서울로 올라가며 세 번째 수목원을 들른 후 집으로 간다. 1박 2일 3 수목원의 그 첫 수목원은 <금강수목원>이었다.
금강수목원의 시그니처는 진노랑상사화. 아직은 덥지만 가을에 접어든 지금 이 시기, 금강수목원엔 꽃무릇(석산)이 가득 피어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석산이 뭐냐, 상사화랑 같은 거냐, 꽃무릇은 또 뭐냐 논란들이 있길래 나도 궁금해 찾아봤다. 지금 피어있는 이 빨갛고 묘한 꽃은 꽃무릇이 맞고, 석산은 같은 꽃이다. 상사화는 영 다르게 생겼고,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꽃이름 논란 속에 걷다 보니, 언덕 두어 개를 넘었다. 날이 엄청나게 더운 건 아니었지만, 내 몸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은데, 마침 사람들이 앉아있는 게 보인다.
"잠깐만 앉자!"
하고 보니, 의자 밑에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아, 어싱이로구나. 요즘 유행하는.
"우리도 걸을까?"
고투어가 물었지만, 지치고 더워서 사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뭇거리자, 고투어 먼저 신발을 벗는다. 양말도 벗어 신발 안에 넣고 의자 밑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어서!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하.. 어쩔 수 없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느릿느릿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이걸 꼭 해야 해? 발 닦을 것도 없는데...
더위에 힘들었던 마음은 금세 가라앉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진흙이 발에 닿자마자 서늘함이 느껴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온몸이 다 시원해졌다. 생소한 느낌에 발에 힘을 주고 걷다가 몸이 곧 익숙해진다. 햇살이 사이사이 들어오는 메타세쿼이아가 보이고, 눈이 편안해진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뇌가 말랑해진다. 기분이 좋다. 400미터를 걸어가서 다시 400미터를 되돌아온다. 달아올랐던 몸과 마음이 적당하게 식는다.
발을 닦고 신발을 신었더니 다시 온몸에 열이 오른다. 갑자기 땀이 훅 난다. 그 모습을 본 고투어가 말한다.
"어싱의 효과인가 봐. 염증 반응 아니야?"
아니야.. 갱년기라 그래...
다시금 더위가 몰려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여기서 걸어서 저기로 해서 돌아 올라가면 전망대라는데 갈래?"
마침 그 앞에 <진입금지> 팻말이 있다!
"진입금지래. 못 가는 곳이야."
그때부터였다.
"유실수원 갈래? 진입금지시켜?"
"야생화원 어때? 거기도 진입금지시켜?"
“야, 열대온실 쪄 죽겠다. 진입금지시키자!"
고투어는 이 진입금지란 말 한마디로 아주 신났다. 땀범벅이 되고 기운이 쭉 빠진 나도 그저 웃는다.
내가 네 덕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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