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고운식물원
묘했다. 거대한 주차장에 내리자 마자 반겨주는 건 무명 가수의 노래였다. 저기 세워져 있는 봉고차에서 튼 건가 하는 순간 노래가 끝나고 들리는 무대인사. 가수 ooo 이란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어 들리는 박수 소리. 그리고 오신 걸 환영한다는 말. 우리한테 하는 얘긴가? 여기 묘한데?
매표를 하고 검표소에 가니 백발을 곱게 묶으신 아저씨가 지도를 보여주시며 수목원의 포인트를 짚어주신다. 하루 종일 이렇게 말해주신다고? 오우.. 수목원장님이신가....이런 노동은 쉽지 않을텐데...
수목원을 다 돌아보는데는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그 정도 걷는 건 일도 아니지.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습도가 7-80프로인 한여름이다! 게다가 이 식물원은 초반부터 오르막길이다. 평평한 지도와는 달리, 전망대까지 쭈욱 오르막길!
최대한 땀이 덜 나게 살살 걸어 올라가본다. 그동안 다녔던 수목원들에 비해 조금 덜 정돈된 모습이다. 표지판도 낡았고, 관리를 잘 안 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말했더니 고투어 왈, "아마 자연 그대로 보존하려고 한 거 아닐까? 여기 멸종위기 식물 서식지라잖아"란다.
맞다. <고운식물원>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식물들의 서식 및 보존 지역이다. 온실 한 켠에 멸종 위기 종들을 따로 모아두기까지 했다. 분명 처음 조성할 때는 이것 저것 예쁘게 해 뒀을 것이다. 숲을 가로지르는 데크, 연못 위에 놓인 바람개비들, 장미원, 온실들. 세월이 지나면서 바랬겠지. 관리 인원은 적어졌을테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오르길 한 시간 여,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온 몸이 축축 쳐진다. 와, 나 더 이상 못 가.. 할 때쯤 전망대 정자에 도착했다! 이럴 수가! 여긴 너무나 정돈이 잘 되어 있는 걸! 잔디도 예쁘게 깎아뒀고, 정자도 깔끔하고. 그리고 와... 우리가 이렇게 높이 올라왔을 줄이야... 정자에 오르니, 주변의 큰 산 꼭대기들이 다 내 어깨 높이에 있다.
그리고 거기, 누군가 계셨다. 선한 인상의 아저씨. 고투어가 모종의 거래를 하는 듯, 천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넸고 아저씨가 쓰윽 까만 판 두 개를 꺼내신다. 고투어는 나에게 목장갑을 건넨다. 뭐지? 하는 순간 나는 이곳에 앉았다!
동그란 검정판 하나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발을 구르면, 미끄러져 내려간다. 처음에는 이쯤이야 했지만, 얕보면 안 된다. 어느 순간 엄청나게 속도가 나면서 나도 모르게 히얏, 호옷,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도르르르 구르는 소리와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함께 난다. 아까까지 없던 바람이 내 귀를 스쳐간다. 땀이 식는다. 급커브에서는 엉덩이 판이 날아가버릴 듯 해 몸에 힘을 주게 된다. 목장갑을 안 꼈다면 손바닥에 불이 났겠네!하는 생각조차 할 시간 없이 레일을 꼭 쥐고 내려온다. 숲속을 가로질러 230 미터. 스릴과 자연의 합작품. 올라갈 때의 그 답답함과 더위가 한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런 게 바로 1천원의 행복이라는 거겠지!
다 내려오니 서운하다. 아. 재밌었는데... 그렇다고 또 타겠다 올라갈 수도 없고. 1시간을 올라갔는데, 이렇게 몇 분만에 내려와 버리다니. 엉덩이판과 목장갑을 반납 상자에 넣고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15분여를 걸었나, 아까의 그 흰 꽁지머리 아저씨가 계신 검표소 앞으로 나왔다. 끝이구나. 얼른 내려가서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자! 발을 재촉해 식물원 입구로 나왔더니, 아까 그 노래 유랑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고요하네.
그래 이게 수목원이지.
여행 Tip. 한여름 오전엔 식물원 전체가 쨍쩽 햇살이 든다고 한다. 오후에는 80프로 이상이 반그늘이라고 하니, 걷기엔 오후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