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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Sep 28. 2024

우연히 만난 소나기처럼

카페 The Kays

그날도 무더웠다. 당연히 더운 여름 날,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포천은 무슨 일인지, 야외 갈비를 선호하네. 땀을 뻘뻘 흘리고 먹는 갈비가 제맛인가...


더위가 한계치까지 왔다. 이제 시원한 카페로 갈 타이밍이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땀을 식히고 멋들어진 펜션에 주차를 한다. 이 근방은 어째 다 펜션과 카페다.


"여기 뷰가 좋아."

다들 말하는 그 '뷰맛집'이로구나.


주문을 하러 들어간 카페는 작았다. 호숫가로 난 통창쪽으로 보고 앉는 계단식 좌석이 몇 개 있는. 그 외 좌석은 모두 카페 바깥, 호숫가에 있었다.


"바깥에 앉자!"

하.. 더운데... 주문을 하고 야외 테이블로 나갔더니, 아뿔싸! 테이블에 의례히 당연히 있어야 할 파라솔이 없다. 정수리 홀랑 타란 얘긴가... 안 그래도 주근깨 부자인데, 만석꾼이 되라고 하는 건가.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가 차 트렁크에 고이 모셔둔 모자를 들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야외로 나가는 문을 열고 돌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어? 돌과 돌 사이가 뒤뚱하더니만 몸이 슬쩍 비틀린다. 어어? 나 넘어지나? 몸에 힘을 바짝 주고 딱 섰지만, 기어이 내 발목은 돌 사이에 껴버렸다. 벌겋게 부어오르고 욱신거린다. 접질렸네, 접질렸어...


갑자기 화가 난다! 더운데! 파라솔도 없고!! 돌계단은 대충 만들어서 발목이나 접질리게 하고!!!

우락부락 화가 나지만, 일단 참는다. 내가 화를 내면 고투어가 안절부절 못 하니까. 모자를 눌러쓰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더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좀 진정시켜 본다.


"윙~~~~~~ 꺄아아아아아~~~~~~"

미쳐버리겠다. 호수에서 뭘 또 타시네? 슬쩍 옆으로 보니 각종 수상 레포츠를 하는 업체가 카페와 딱 붙어 있다! 유난히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지나가면 책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다. 덥고 욱신거리고 집중 안 되고, 화나고.


에라, 책이고 뭐고 때려치워! 뭐 여기까지 와서 책이야. 그냥 경치나 보고 멍이나 때려! 산수 좋군! 이 더위에 참 잘들 노네.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화났던 마음이 조금 안정된다. 비로소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위와 책과 나와 소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왔다. 뭐야, 이 책 너무 재밌잖아!


후드득.

한참 책에 몰입 중인데, 책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설마, 소나기야? 하는 순간 더 떨어지는 빗물. 부랴부랴 책을 가방에 넣고, 커피를 챙겨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이곳 저곳 야외에 흩어져 있던 다른 가족들도 우르르 실내로 들어온다.


아무도 없던 실내가 갑자기 꽉 찼다. 계단식 좌석에 옹기종기 앉아 통창으로 비오는 모습을 감상한다. 꽤 많은 양의 소나기가 내리니 분위기가 좋다.


비가 그칠 무렵, 하나 둘씩 바깥 좌석으로 다시 나간다.


"우리는 가자, 집으로."


1년이 지났지만, 어느 순간 문득문득 이 날이 기억날 때가 있다. 그 날, 내가 발목을 접지르고, 태양 아래 모자를 쓰고 앉아 책을 읽었지. 책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무척 재밌었지. 그리고 소나기가 왔어.


행복한 기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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