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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Sep 07. 2024

겁쟁이 여행가의 민통선 넘기

쫄보가 따로 없다. 신분증을 준비하라는 표지판이 지속적으로 나오다가 급기야는 헌병대와 마주했다.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 것이 괜히 더 으스스하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와는 달리, 여기저기에 어서 오라며, 반가운 문구들이 잔뜩이다. 꽃도 많이 심어뒀다. 최대한 밝게 보이고 싶었겠지. 이곳은 교동도. 강화의 끝. 북한과 맞닿은 곳이니까.



선명하게 반으로 갈라진 대한민국 전도 뒤로 잔뜩 모여있는 구름 아래 있는 땅이 바로 북한이다.



헌병대는 무사히 지났다. 불심검문을 하던 때도 아니고, 헌병대가 갑자기 날 잡을 일도 없다마는 괜한 긴장을 했더랬다. 차는 이제 산으로 올라간다. 역시나 "이곳은 무서운 곳이 아니야. 밝고 명랑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라며 말하듯 꽃이 만개한 곳 앞에 이르렀다. <화개정원> 오늘 고투어의 목적지다. 



남편과 나는 "고투어"라는 이름으로 매주 여행을 한다. 남편은 기획을, 나는 기록을 한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찾아 최적의 루트를 계산하는 건 남편의 몫.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기획자를 항상 우쭈쭈 해줘야 하므로, 우리 여행의 이름은 남편 성을 따 "고투어"다. 



오늘 고투어의 컨셉은 '비 오는 날'이다. 비가 온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고투어의 리스트에는 '비 오면 가기 좋은 카페' 목록이 있다고 한다. 대개는 금요일 밤에 다음 날의 일정이 모두 정해지지만, 토요일 새벽 날씨와 교통 상황에 따라 일정은 변할 수 있다. 고투어 맘이다. 



아침부터 내린 비에 우리는 '비 오는 날 가 볼 카페 리스트' 중 하나로 길을 떠났다. 가까운 강화도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후로 고투어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커피 맛도 중요시 여긴다. 그야말로 고바리(스타)다. 


"오늘 갈 곳은 분위기야. 커피는 중상 정도일 듯."


그렇게 간 곳은 고즈넉한 한옥 카페였다. 정말 비가 오니 좋았다. 젖은 풀숲에서 정령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주인장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풀 사이사이에 돌상을 하나씩 세워두었다.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오늘 나의 기록은 이 카페가 아니다. 민통선이다. 




나는 이상하게 민통선이 무섭다. 몇 달 전, 민통선을 넘어 들어갔던 고성의 건봉사도 그랬다. 여기서부터는 '민간인 동제구역'입니다라는 푯말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다. 오늘은 헌병대까지 서 있으니 더 두렵다. 


"여긴 북한과 너무 가까워서 그래. 가끔 주민들이 넘어오기도 한데." 고투어가 내 불안감을 증폭시켜 준다. 





비가 와서 조금 어두운, 그러나 꽃은 만발한 화개정원


그렇게 도착한 곳은 <화개 정원>이란 곳이다. 화개산에 위치해 화개 정원이라지만, 분명 저 '화'는 꽃화자겠지. 지천에 꽃을 심어뒀다. 날이 밝고 맑았더라면 꽃이 반짝반짝 이뻤을 텐데. 비가 오는 날이라 조금 아쉽다. 




그러나 아쉬움도 잠시. 입장료가 너무 비쌌다! 표면적으론 성인 5천 원이다. 오, 보통 수목원이 8천 원에서 1만 원이 살짝 넘는 걸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인데 싶다. 그러나 모노레일 가격이 사악했다. 인당 만삼천 원! 게다가 무조건 왕복 티켓만 구매 가능이다.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길은 꼬불꼬불하고 계속 오르막이고, 정상에 화개산전망대가 있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무조건 모노레일을 타야 한다. 비가 오는 오늘, 우리도 타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다행히 모노레일은 5분에 한 대씩 운행하지만 아주 많이 느리다. 아.. 걷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타길 잘했다. 전망대에 올랐다가 걸어 내려오며 깨달았다. 그래, 올라갈 때는 꼭 타야 한다! 




물 건너 보이는 땅이 북한, 저렇게나 가깝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가 보인다. 5분도 안 걷는다. 그리고 이렇게나 가깝게 북한이 보인다. 손에 잡힐 듯, 다리 하나만 놓고 건너면 될 듯, 이처럼 가까운데... 



다행히 비가 그쳐서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날이 좋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 저기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히 느껴진다. 여기서 저 땅을 바라보고 있는 실향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전망대 한쪽에는 의자가 여럿 놓여있다. 마음껏 보시라는 배려겠지. 그곳에 앉아 두고 온 사람들을 떠올리겠지. 


우리도 아쉬운 마음에 1천 원을 결제하고 디지털 망원경으로 줌을 당겨 보았다. 무언가 꼬물거리는 것은 사람의 움직임이겠지. 날이 좋을 때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도 선명히 다 보인다는데, 우리는 꿈쩍이는 움직임만으로도 '그래도 봤다'며 씁쓸히 좋아했다. 





화개산 <솥뚜껑투어길 스탬프 투어> QR 코드 찍는 솥뚜껑 되시겠다!


내려오는 길은 걷기로 했다. 모노레일 표가 왕복이었다는 사실은 잊자. 구불구불 내려오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그래선가, 쉬엄쉬엄 구경하며 내려가라고 아기자기 정성껏 꾸며두었다. 힘이 되는 글귀도 적어 두었고, 꽃도 잔뜩 심어뒀다. 도깨비도 숨겨놨고, 이렇게 솥도 여러 군데 있다. 솥이라고? 하며 가까이 가서 보니, 여기 화개정원에서는 "솥뚜껑투어길 스탬프 투어"라는 행사 중이다. 




<수목원 스탬프 투어> 전자책을 낸 사람으로서, 그리고 올 가을과 겨울에 2차 수목원 스탬프 투어를 기획 중인 사람들로서! 이런 스탬프 투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만, 날씨가 갑작스레 안 좋아졌다.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 이 재미를 놓치다니. 이것 때문에 우리, 여기 다시 와야 해? 




근데, 자기야, 나 민통선은 너무 무서워....

앞으로 일 년 정도는 가슴의 안정이 필요할 거 같아... 





Tip!

해가 좋은 날 가셨다면 양산이나 모자, 안되면 우산이라도 꼭 준비하시길 바란다. 꼬불꼬불한 저 오르막길(혹은 내리막길)엔 햇볕을 피할 곳이 없다. 고투어 왈, "햇볕에 머리가 홀랑 벗어지겠는걸?" 

염두에 두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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