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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20. 2022

할로윈과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

Photo by David Menidrey on Unsplash


할로윈 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서양의 기념일들이 전 세계에 전파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 친화'적인 문화 때문일 듯하다. 할로윈 데이에는 아이들이 귀신이나 괴물 분장을 하고, 이웃집을 다니며 사탕을 얻는다.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이 양말을 침대맡에 두고 자면, 선물을 받는다. 이 날들이 사실상 아이들을 위한 축제 같은 날들이 되면서, 온 세계를 휘어잡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실 하나는, 한 사회에서 아이들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아이들은 모든 사회의 미래이고, 그 사회를 가장 아름답게 물들이는 존재들이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의 성공은 그런 진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 있다. 아이들이 꼬마 괴물로 변신해 돌아다니며 사탕을 얻고, 두근거리며 밤새 캐롤을 부르는 장면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얼마나 있을까? 


얼마 전 '우리나라는 도시 전체가 노키즈존'이나 다름없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깔깔대면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은 키즈카페나 일부 놀이터 정도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간신히 어린이날이 하루 있긴 하지만, 그날도 놀이동산 같은 곳에 아이들을 몰아넣는 날에 가깝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동네를 거닐고 뛰어 놀면서 한 사회가 아이를 환영한다는 느낌을 준다고는 느끼기 어렵다. 


아이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느끼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시설이 좋은 곳도 있겠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어두는 경우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문밖으로 나가 뛰어놀 공간조차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대형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가까운 곳에 놀이터조차 없는 주거환경도 널려 있다. 


Photo by Joshua Lam on Unsplash


아마 전 세계에 아이들이 불행한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할 학자는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한 사회와 문화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살아나야 한다. 디즈니나 픽사, 지브리의 성공만 보더라도,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얼마나 폭발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물들이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이들을 가두고, 억압하고, 배제하며, 차별하는 문화를 만들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저출생 국가가 되어 점점 사그라드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아이가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마음은 뚝 떨어질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기도 쉽지 않고, 관대함 보다는 엄격함을 강요하며, 환대 보다는 배제만을 먼저 앞세우는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을까? 심지어 조금만 크면 무한경쟁 속에 들어가, 행복 보다는 학업 스트레스를 먼저 상상하게 하니, 어느모로 보나 아이를 위한 사회라고 보긴 어렵다. 


이 아이 적대적인 사회가 계속 지속 가능성을 가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거리에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우리 사회는 더 괴로운 사회로 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축제처럼 누릴 수 없는 사회와 문화는 결국 메마르고 권태로운 공간으로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나는 한 사회의 목표가 아이들의 행복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의 의심없이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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