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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02. 2022

사람이 사람을 붙잡고자 했던 현장

Photo by Chris Linnett on Unsplash



늦은 밤, 딸이 살려달라는 문자를 받은 아버지는 택시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통 통제 때문에 택시가 들어갈 수 없자, 1km 이상을 달려가 딸을 찾았다고 한다. 다행히 딸은 파출소에 있었는데, 딸의 상태가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정도로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희생자가 너무 많아 경찰차나 구급차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 아이를 등에 엎고 다시 1km 정도를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어느 30대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와 병원까지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여의도 인근 병원까지 갔지만, 그곳에도 사상자들로 꽉 차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분당에 있는 병원까지 다시 새벽에 딸과 아버지를 데려다주고, 떠났다고 한다. 


참사 현장에는,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CPR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현장에서는 여러 시민들이 CPR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형식적으로 CPR 교육을 받거나 실습 정도를 해본 사람들은 있어도, 실제 응급상황에서는 모두 처음 해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타인의 목숨이 걸린, 그런 일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CPR을 시도한 시민들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CPR을 시도하여 사람을 살린 사람조차, 더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집에 가서 한참을 울기만 했다고 한다. 세월호 때도 여러 아이들을 구한 의인이 수년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골목에서 사람들을 높은 지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척 애썼다고 한다. 사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앞에 벌어친 참사 현장을 쉽게 믿을 수 없다. 먼저 현실을 부정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현실이라 인정하고,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마음과 본능적인 선의가 필요하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한명만 더"라고 호소하면서 사람들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그 중 한명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리치고 수신호를 보내며 휩쓸려가는 걸 막고자 했다고 한다.


인파로 인해 압박감이 심한 와중에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하자 숨쉴 공간을 내어주기 위해 자신이 자진해서 인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거나, 밀고 들어오는 뒷사람을 버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당장 숨을 못 쉴정도로 압박이 심한 상태에서도, 눈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더 공감하고 본능적으로 행동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외쳐서,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힘을 합쳐 아이를 빼냈다고 한다. 그리고 다같이 모여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 말을 걸어줬다고 한다. 여러 가게들은 간신히 빼낸 사람들이 누워 있고, 그들을 살리려는 CPR과 다독거림의 현장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가게들이 의료인 없는, 그러나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응급실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출동했던 소방대원들도 상당수는 '소방비상대응 3단계'를 처음 경험하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 거의 아무런 장비도 쓰지 못한 채 맨손으로 사람을 한 명씩 구조해내야 했다고 한다. 대원들조차 울면서 CPR을 시도하는 등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해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대원들이 CPR을 하는 동안, 인간띠를 형성하여 쓰러진 사람들을 가려주고자 나선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에 맞서 타인들을 붙잡으려 간절하게 애썼던 현장이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구해내고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썼던 현장이었다고 한다. 그 시간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그렇게 손쉽게,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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