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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9. 2023

계절이 주는 위안

Unsplash의Joel Holland


계절이 온다는 게 삶의 가장 본질적인 위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계절이 오는구나, 그러면 이번 봄에도 서해의 갯벌에 가야지,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걸어야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걸 구경하고, 땡볕 아래에서 한참 수영을 한 다음 수박을 먹어야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위로와 설렘을 느낀다. 계절이 또 다시 와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오지 않는다면, 삶은 더 팍팍하거나 갑갑할 듯하다. 생각해야할 건 스케쥴러 속의 온갖 의무들과 계획들 정도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계절이 오면, 그런 현실의 그물망을 넘어선 더 큰 것을, 삶의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처럼 느낀다. 인생의 온갖 부담과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건 온 세상을 가득 메우고야 마는 꽃들 앞에서 무언가 아무래도 좋은 것 비슷하게 전락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어떤 문제로 인생이 괴로울지라도, 뜨거운 태양 아래 뛰어드는 바다 앞에서는 어딘지 비본질적인 것이 된다. 때론 삶에는 해변 앞에서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서, 에라이 모르겠다, 나를 찾는 현실 따위는 알 바 아니다, 같은 심정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뒤늦게 수습하느라 정신 없을지라도, 일단은 눈앞에 있는 하늘과 바다와 햇빛을 누려야만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계절은 바로 그런 하늘과 바다와 햇빛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계절과 함께 오는 그 세계에 대한 상상, 혹은 그 계절로 인해 얻었던 기억에 대한 이미지, 그 상상과 이미지가 주는 그 느낌이야말로 삶의 본질 같기도 하다. 회사에서 일 잘하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하는 것보다도, 인생의 본질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계절을 누리고, 계절에 어울리는 과일을 먹고, 눈을 밟거나 바다에 뛰어드는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 것이다. 


올해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시 가장 기대되는 건 계절의 일들이다. 책을 낸다든지, 직업적인 일과 성취라든지, 사회적으로 이루어나갈 어떤 일들도 있겠으나, 그 모든 일들도 계절의 설렘에는 미치지 못한다. 봄에 걸어나가고, 여름에 뛰어들고, 가을을 애틋이 여기며, 다시 눈과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날들을 가장 설레며 사랑할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돌아오는 계절들을 누리다 보면, 세월과 함께 지나가는 일 같다. 그래도 계절이 또 올 때까지는 살아가는 것이고,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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