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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y 19. 2023

관계는 시간을 주는 것

Unsplash의Everton Vila


매일 출퇴근하고 육아하며 살다보니, 사람들 만날 시간 낸다는 게 쉽지 않다. 주말은 거의 가족끼리 보내는데, 이것도 어쩔 수 없다기 보다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 느껴진다. 가령, 주말을 두어번만 가족끼리 함께 못 보내면, 가족도 금방 소원해질 수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좋은 관계, 애착, 밀착감, 사랑 같은 것은 화분에 물 주듯 끊임없이 지속적인 '시간 주기'가 필요하다.


어떤 관계는 몇 년에 한 번만 만나도 괜찮은 관계가 있지만, 어떤 관계는 한 해에 몇 번쯤은 만나주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 그런데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야만 하는 관계일수록, 사실 더 소중한 관계에 가깝다. 어린 왕자가 장미에 물을 주고 여우를 매일 만나듯, 관계란 시간의 빈도와 양 만큼 깊어진다. 그래서 가족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하고, 그 다음이 깊은 우정, 그리고 보다 느슨한 지인들과의 관계 등이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 하나는, 자주 보고 가까운 관계가 반드시 유쾌한 관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관계가 깊어지고,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낼수록, 서로에게 실망하거나, 삐지거나, 다툴 일도 그만큼 많아진다. 알게 모르게, 서로를 조금 미워하거나 질투하는 구석들도 생겨날 수 있다. 반면, 덜 보는 관계일수록, 만나서 서로 좋은 점만 보여주고, '환대'만 해주고, 호의와 선의만 내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간을 많이 투여하는 관계든 그렇지 않은 관계든 다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시간을 많이 투여하는 관계는 우리 삶의 뿌리 같은 것이 되고, 우리 삶을 가장 본질에 가까운 곳에서 구성한다. 반면, 조금 먼 관계는 그것대로 우리에게 선의와 호의, 가벼운 환대를 지속적으로 전해주어 나름대로 좋은 기분과 삶의 표면적인 기쁨을 구성한다. 둘 다 모두 삶에는 필요한 일이다. 


만약 너무 가까운 관계만 있다면, 그 삶은 무척 무거워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때로 연극배우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 서로의 모든 걸 아는 사이 뿐만 아니라, 서로의 좋은 점만 바라봐줄 관계도 있어야 한다. 반면, 삶에 너무 먼 관계만 있다면, 그 삶은 그것대로 너무 가벼워진다. 모든 관계가 연기 같고, 진짜 마음을 나눌 사람은 없는 셈이 된다. 


요즘 나는 이 딜레마 가운데서 나름대로 관계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 특히, 약간 멀지만 한 번씩 볼 필요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들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만나보기도 한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기꺼이 직장 근처까지 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오랜만의 안부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호의를 확인한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옛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여러 분야의 지인들을 이따금 만나기도 한다. 내겐 다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가장 귀한 시대이고, 다들 바쁘고, 시간 없는 시대인데, 관계라는 건 시간을 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는 내게 시간을 써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또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쓴다. 사실 인간사, 사람의 삶이라는 게 다 '시간 쓰기'와 다름 없다. 삶이란, 어디에 얼만큼 시간을 쓸지가 사실상 전부나 다름 없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들은 오로지 나의 시간을 쓴 것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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