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는 사랑에 관해 무척 특이한 관점을 제시한다. 사실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여러모로 독특해서 그와 같은 책은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점을 아주 평이하게 서술해보면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랑하는 건 상대방 보다는 사랑 자체라는 것이다. 상대방은 사랑에 들어가게 하는 일종의 입장권이나 티켓 같은 존재다.
바르트에게 사랑이란 어떤 세계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마치 우리를 애무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세계이자, 눈부시고 황홀한 열정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행복감, 즉 '충일감'을 맛본다. 현실의 모든 문제가 별 것 아닌 듯한, 당신과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실 <사랑의 단상>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사랑 고백과 비슷하다. 이 책은 사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백록 같기도 하다. 이 사랑에 대한 사랑은, 달리 말해, 어린 시절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부모의 품 안에서 걱정 없이 세계를 누리고, 놀이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사랑에 입장하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이 세계에 입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필 그 사람이 내 안의 욕망과 딱 일치해준 덕분에, 우리는 그 세계로 입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난 건 그것 자체로 행운이다. 당신이 내 욕망에 일치해주어서 고맙다. 그 덕분에 나는 이 사랑의 세계로 들어섰다.
롤랑 바르트의 관점은 여기에서 계속 파생되어 나간다. 가령,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의 특별함이 아니라, 내 욕망의 특별함을 알려준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은 유독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다. 그는 일종의 나의 욕망이라는 열쇠구멍에 딱 맞는 열쇠였던 것이다. 그 딱 맞는 열쇠를 만난 덕분에, 나의 문은 열렸고, 나는 사랑이라는 세계, 즉 '상상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의 단상>은 너무나 흥미로워서 예전에 나는 한달 내내 이 책만 읽는 독서 모임을 연 적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여러개 골라서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에 싣기도 했다. 다른 책들은 이렇게 많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사랑의 단상> 만큼은 7번이나 인용했다. 기다림, 질투, 이별, 낭비, 포옹 등에 대한 바르트의 매력적인 관점들 만큼은 최대한 담아내고 싶었다.
학자나 문인들마다 사랑에 대한 관점들이 다른 것이 참 흥미롭다. 가령, 에리히 프롬이나 알랭 바디우의 사랑관은 이러한 바르트의 사랑관과 완전히 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저마다 다른 사랑관들에 대해서도 다 공감할 지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사랑에 관한 기이한 다채로움은 우주의 별들과 같은 다양성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마다 사랑이 다르게 정의되고, 새로이 탄생한다는 점이 신비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