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Mar 10. 2023

소통의 기술

Unsplash의Antenna


언젠가부터 강의나 북토크를 하고 나면, 여태까지 행사 중에 가장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질문하는 걸 처음 본다, 이렇게 끝나는 시간까지 소통이 이루어지는 건 처음이다, 같은 식의 피드백이다. 얼마 전 북토크에서도 여태까지 행사 중에 가장 독자들과의 소통이 많았다는 서점 측의 피드백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고, 나는 그 비결이랄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일방적인 형태의 소통 구조라는 게 시효가 끝났다고 느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어릴 때부터 주입식 교육이 일상화되었다 보니, 듣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고 강연자는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혼자 내내 떠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온갖 이론을 통해 보더라도, 그런 형태의 교육은 가장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더군다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인데, 어디를 가나 똑같은 말을 앵무새나 로보트처럼 반복하는 것에 스스로 문제의식이랄 것도 느꼈다. 만약 정말 일방적인 내용만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유튜브나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본인의 시간과 노력, 때론 돈까지 내고 현장까지 왔다면, 나는 그 사람이 '다른 경험'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아까운 시간을 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면 내게도 매번의 시간이 새로운 경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통이란, 그렇게 마음 먹는다고 곧바로 되지는 않는다. 특히, 강연자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내세우는 권위 같은 것에 위화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질문 해달라고 사정해도, 속으로 평가만 하고 쉽게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나도 어떻게 진솔한 소통이 가능할지 고민을 하면서, 아주 단순한 비결 하나를 알게 되었다. 타인과 진솔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진솔하면 되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고민과 질문을 강요하기 전에, 먼저 나의 고민과 질문을 풀어놓으면 된다. 당연히 앞에 서있는 작가나 강연자라고 해서 그리 남들과 다른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고민을 갖고 살고, 여러 감정적 어려움들을 겪으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온 그냥 똑같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공유하기만 해도, 분위기가 녹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게 소통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나서, 사람들의 질문을 들으면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질문을 듣고 나서도, 자기 자랑이나 자기 지식을 늘어놓기나 바쁘다면, 또 거기에서 소통은 끝나게 된다. 사실, 우리의 고민이랄 것은 입 밖에 내어놓는 순간, 스스로 말하는 순간 상당수 해결된다. 그리고 그저 나도 그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나의 사례를 참고 정도로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개 이 대화랄 것은 충분한 기능을 해낸다. 


물론, 내 글도 그렇듯 내가 말하는 방식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테고,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실망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이어지는 현란한 지식의 향연을 기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런 지식 전파는 책이나 온라인 강의 정도로 하면 된다. 반면, 사람이 있는 곳에 가는 일은, 그곳에 있는 사람과 눈빛과 육성을 교환하며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뚜벅뚜벅 가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