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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Feb 14. 2023

진실 속에서 강인하게 사는 사람

Unsplash의Ben White


권위적이거나 다혈질적인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의 진심을 결코 알 수 없다. 부하 직원이 그에게 진심을 말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떤 종류의 사람은 진짜 정보로부터 원천 차단 당한다. 그는 그로 인해 진짜 세상을, 진짜 사람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이 그의 성격이나 성향을 알고,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리더는 관대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이 심한 사람도 진짜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저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데만 신경을 쓰고, 적당히 둘러대고, 거짓을 내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히스테릭한 사람은 아무리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도 타인들과 가까워질 수 없다. 마치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타인의 진심을 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관대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해심을 갖고 타인을 대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때론 '호구' 같아 보이거나 '약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사람이 가장 강하다. 그는 타인들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마음을 알게 되며, 깊이 있는 곳에서 인간을 만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권력과 폭력을 통해 피상적으로 타인을 다루는 사람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외롭고, 취약하고, 금방 허물어질 것처럼 텅 비어 있다. 그에게는 진짜 정보, 지식, 앎이 없고, 위선과 거짓으로만 삶이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해와 수용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은 꽉 찬 사람이 된다. 그는 진심으로 엮인 삶의 힘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삶의 깊이를 받아들인다. 


이 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실제로는 더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의 불안과 공허함을 이해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며, 오만한 사람의 허영심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짜 마음을 항상 듣고 살기 때문에, 누구도 그렇게까지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거짓된 관계와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진실과 진심이 있는 세계 속에 살아간다. 어차피 한 번 뿐인 삶을 사는 것이라면, 후자의 삶을 택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그 삶으로 가는 문은 하나 뿐이다. 그것은 이해와 관대, 수용의 문이다. 이 문을 열면, 우리는 비로소 진실을 듣게 된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누군가는 동굴 속에서 바깥의 그림자만 보며 살겠지만, 누군가는 동굴 밖으로 나와 진실을 볼 것이다. 그렇게 나와 타인을, 인간을 이해하는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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