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수록 인연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게 된다. 나아가 인간의 삶이라는 건 대부분은 다 그저 사람의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청년 시절에만 해도, 인연이란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글쓰기 능력이라든지 인문학적인 지식 같은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 보면, 글쓰기나 지식조차도 결국 다 사람의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사람 없는 우주의 허공에다가 천재적인 기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란,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과 연결되는 일일 뿐이다. 그 속에 별도의 대단한 외계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건 아닌 것이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고, 누군가를 대리하거나 변호하는 일도, 그밖의 모든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은 그저 사람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 바깥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 사람 안에 있는 일이라고 느끼곤 한다. 삶이라는 건 거의 인연을 소중히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치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 또 내가 좋게 느끼는 사람, 내가 호의를 건네고 싶은 사람, 내가 충실하고 싶은 사람, 내가 믿고 싶은 사람,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의 여정을 빼면 과연 삶이라는 게 존재할 수나 있을까?
흔히 사회에서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도 거의 열에 아홉은 사람과 관계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타인을 이해시키는 능력,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능력, 타인에게 신뢰를 주는 능력, 타인을 만족시키는 능력, 타인의 마음을 알고 협상하는 능력 바깥에 '별개의 능력'이랄 게 있긴 할까? 청년 시절 즈음에만 해도, 나는 그걸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천재가 되면 되는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다소 고립되어 있던 20대와 달리, 내가 보낸 30대를 생각해보면, 이 삶이라는 것은 타인의 존재 없이는 거의 단 하루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가족과 친구, 동료 뿐만 아니라, 함께 글쓰는 사람들, 모임을 하고, 호의와 선의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빼고 나면 삶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시절이다. 삶에서 무언가 도모하든, 사회에서 자리를 잡든, 일상에서 행복을 얻고자 하든 그것은 내게 닿은 사람들 소중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아주 잘 알 것 같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는 없고, 오히려 삶을 파괴한다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산소가 산불을 일으킨다고 하여, 산소 없이 살아갈 수는 없듯이, 결국 삶은 사람이라는 산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외로 삶에서 제대로 해야할 일은 사람을 알고, 사람 곁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할 것이다. 누군가는 글쓰기나 작곡으로, 누군가는 잦은 만남이나 모임으로, 누군가는 강연이나 방송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 본질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살아갈수록 그저 점점 더 알게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