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기로, 삶이 변화하는 시점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결혼할 무렵 그랬고, 책을 출간하거나 직장에 들어갈 때 그랬다. 요즘에도 회사를 떠나고 독립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은 부지런히 만나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 느끼는 건, 사람은 인생의 변화 앞에서 역시 사람이 필요한가보다 생각한다. 여행의 초입에서 만나는 가이드나 게스트하우스의 안내자처럼, 삶에도 무언가 시작될 때, 사람들을 찾게 된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삶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래서 무언가 시작해야 할 여정 앞에 서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배움'이 시작되는 듯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이 스승이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때론 현실적인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고, 때론 가능성이나 꿈, 희망을 배우고 얻는다. 순례 여행에서 떠날 짐을 챙겨주는 마을 사람들처럼, 모두가 주머니에 무언가를 챙겨준다.
그렇게 보면, 사람이란 역시 서로를 찾고, 응원하고, 지지하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타인의 결혼을 축복하고 몰려가서 꽃이라도 하나 건네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아이가 생기면 역시 작은 내복 하나라도 챙겨주며 조언이라도 하나 건네고자 한다. 새로이 자기의 삶을 향해 떠나려는 이에게는 역시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려고 한다. 시작하는 사람은 약간 아찔한 불안 앞에서 사람들을 찾고, 사람들은 응당 그의 주머니에 도토리 하나씩을 넣어준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응원들을 많이 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북돋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이켜보면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는 목소리로 남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실 그런 타인의 목소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발을 내딛고 달려오라는 부모의 목소리, 그때부터 첫 걸음마는 시작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등떠밀어주며 한 손에 초코우유 쥐어주는 따뜻한 손길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그 무한한 손길들을 나누며 사는 게 삶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직업도 결국 그 누군가의 곁을 잠시 지켜주는 일이다. 인생의 기로에 선, 절망에 빠진, 어디에 간절히 도움을 원하는 그 누군가의 눈을 마주하고, 그의 문제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그를 대신하여 싸우고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떠나려는 저 삶, 나를 등떠밀어주는 사람들이 내 뒤에 있는 저 삶에는, 사실 그렇게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딘지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내가 받은 도토리들을 또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 떠날 것이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았고 떠났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서로에게로 부단히도 그 마음들을 전했던 발자국이 그 모든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받았고, 또 내가 그 누군가에게 전한 그 많은 마음들이 우주가 끝날 때까지 돌고 돌아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은 또 어느 땅에서 삶을 시작하려는 한 아이의, 청년의, 그 누군가의 등을 살며시 밀어주는 바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