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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Sep 18. 2023

작가로 10년을 살고 달라진 점

이제 나도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활동해온 셈이 되어서인지, 일종의 경험에 대한 증언을 많이 요청받게 된다. 작가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 어떻게 10년 이상 꾸준히 글을 써올 수 있었는지, 작가의 일과 변호사의 일을 겸한다는 것 또는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있다. 강연, 인터뷰, 멘토링 등에서 궁금해하는 건 나의 '지식' 보다는 '경험'일 때가 많다.

그러면서 하나 느끼는 묘한 점은, 이것이 내가 특출나게 무언가 대단히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10년 이상을 한 분야에서 살아냈다는 일 자체 때문인 것 같다는 점이다. 누구나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세상의 모든 삶을 살아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작가로 10년을 살았다면, 그 대신 스포츠선수나 교사, 요리사로 10년을 살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경험이 자산이라는 건, 세월의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나의 경험이라는 건, 15살 때부터 20년 동안 계속 글을 써왔고, 지난 10년 동안은 매년 책을 내왔고, 또 지난 5년 정도는 법 분야에도 몸 담아 공부하고 일을 해왔다는 그 세월의 특성 자체에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나의 천재적인 재능이나, 위대한 업적이나, 눈부신 개성이 아니다. 그저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 그렇게 사는 일은 어떠한 것인지,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는지, 왜 그러는지, 묻는다. 나아가 그 와중에 또 다른 직업을 얻는 건 무엇이고, 그렇게 세월을 쌓아서 어떠했는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려주는데, 신비롭게도 그런 이야기가 자신에게 '답'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에게는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살아낸 어느 삶의 증언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10년이나 한 사람과 사랑을 하셨어요, 20년이나 자신의 사업체를 꾸린다는 건 무엇인가요, 평생 쉬지 않고 산을 오른다는 건 어떤 일인가요, 그런 질문들이 메아리처럼 돌아올 때, 우리 삶에는 진정한 '참고'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는 남들한테 그다지 훈계할 생각이 없고, 타인들의 삶을 깊이 책임질 만큼의 조언을 해줄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참고'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다행이라고 느끼곤 한다. 매일 글을 쓰니까, 삶에는 신비로운,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더군요. 나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슬프거나 절망적이거나 그저 글을 쓰며 견뎌왔고, 이제는 그것에 관해 증언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요청에 응하고 있을 따름이다.


요즘 하나 이야기하는 건 그런 것이다. 내가 10년 전쯤에 처음 책을 낼 때, 같은 분야에서 책을 쓰는 작가들 중 지금까지 글을 쓰는 작가가 10%도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인문학이 유행할 때 인문학 책을 쓰고, 돈 버는 책이 유행할 때 돈 버는 책을 쓰고는 반짝 하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많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십만 부의 베스트셀러 같은 걸 쓴 건 없지만, 그냥 10년, 20년 계속 써왔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꽤나 괜찮은 삶의 방식처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면 천천히, 어떻게든, 내 글이 닿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다 닿아가는 것 같다고 말이다.


지난 10년, 혹은 20년간 나는 정말이지 나의 마음 가장 안쪽에서 내가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계속 쓸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임을 느낀다. 때로 그 이야기는 청춘의 우울과 열정과 낭만이었고, 때로는 사랑과 육아이며, 때로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고, 때론 허무맹랑한 판타지와 망상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 순간 내게는 가장 진심 아닌 것들이 없었고, 그랬기에 내게는 10년, 20년이 무슨 지리멸렬한 대단한 여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진심어린 하루하루들 뿐이었을 따름이다.


결국 우리는 세월로 말하고, 세월로 자기 자신이 된다. 앞으로 또 5년, 또 10년 쌓은 세월이 그 5년 뒤, 10년 뒤의 내가 될 것이고, 내가 증언할 그 무엇이 될 것이다. 내가 지키고 쌓은 것, 몰두하고 이겨낸 것, 경험하고 만들어낸 것, 그렇게 써낸 이야기가 내가 되고 내 삶이 되며 나의 콘텐츠가 된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이라는 재료로 자기의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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