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비밀이 갖고 싶다."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요즘 유치원에서 '비밀'에 대해 배운 모양이었다. 세상에는 비밀이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엄마나 아빠도 모르는 자기만의 것이어서, 결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엄마, 아빠에게는 비밀이랄 게 없는 모양이다.
세상에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밀이 없는 시절은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비밀이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가령, 밖으로 나가서 낙엽 하나를 주운 다음, 그것을 어느 바위 밑에 숨기면서 자기만의 비밀로 가지면 된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만의 비밀을 가지기에는, 아직 차마 모든 걸 엄마와 아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참을 수 없음이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아이는 스스로 비밀이 없는 줄 알고 있지만, 아이에게도 비밀은 있다. 이를테면, 나는 아이가 종일 무슨 상상과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 없다. 유치원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모른다. 아이는 자기가 부모에게 비밀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부모에게 아이는 비밀 덩어리이고, 수수께기의 존재이다. 아이의 감정, 생각, 상상, 일상 그 모든 것들을 투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베일 뒤에 어느 정도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사실,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비밀들을 갖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이유랄 것을, 아마 평생에 걸치더라도 완전히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몇 가지 이유쯤이야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 이유는 내가 나를 속이는 가짜 이유일 수도 있다. 내 무의식의 진짜 이유를 알아가는 데는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나 자신조차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나도 비밀이 갖고 싶다."라고 말하는 내 앞의 이 순진무구한 존재에게서도, 사실 비밀을 읽어내는 이 태도야말로,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비밀이 있어." 아이는 멀뚱멀뚱 나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비밀이 없을지라도, 엄마랑 아빠한테 너는 비밀이 있는 존재란다." 나는 아마도, 그 태도를 잃지 말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섣불리 타인을 다 파악했다고 믿다거나, 그에게 궁금할 것도 없다거나, 나아가 나 자신조차 내가 명확하게 안다고 믿는 그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수수께끼를 지켜내는 것, 타인을 비밀스러운 존재로 두는 것 자체가 아마 타인을 사랑하는 일일 거라는 생각도 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다. 당신에게는 비밀이 있어서,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들어야 한다는 것, 당신이 누구든 섣불리 폭력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당신을 당신인 채로 놓아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