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청년들이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결혼과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고민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요.'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결혼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은 없다. 1등이나 10등 신부감이나 신랑감이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생략한 채 마치 좋은 물건 고르듯 결혼 상대를 고른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태도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좋은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렇게 질 좋은 상품을 고르듯 결혼 상대 고르기에 접근하는 태도 자체가 좋은 결혼으로 가는 것과는 거리가 먼 태도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고르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결혼을 하고자 하며, 결혼을 해서 어떤 사람으로,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야 한다. 단순히 내 결핍을 채워줄 누군가를 바라는 건 아닌가? 내 부족한 벌이를 대신 채워줄 사람, 내 부족한 요리 실력이나 살림살이를 대신해줄 사람, 내 부족한 인격이나 생활 능력을 해결해줄 사람을 바라는 식이라면, 사실 나는 결혼 상대를 원한다기 보다는 '문제 해결 ai 로봇'을 바라는 쪽에 가깝다. 상대를 그냥 수단이자 도구로 구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평생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기질로 살아온 사람에게 어디까지 맞출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혼자 살 때 처럼, 그냥 하루종일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결혼할 사람이 알아서 다 맞춰줄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반려동물을 구하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아니, 반려동물과 함께 살더라도 매일 신경쓰고 맞춰야 할 게 한 둘이 아니다. 하물며 사람과 함께 살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맞추고 바꾸고 타협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사람과 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결혼 상대를 고른다는 건 적어도 그런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전제로 해야 어느 정도 가능하다. 사람 고르는 데 절대적인 기준 같은 건 있기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 전제 위에서 하나의 팁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런 마음과 태도를 상대방 또한 백번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고 이해를 하고 고쳐나갈 수 있을지를 약속할 수 있다면, 그런 상대라면, 결혼해도 좋지 않나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두 사람만의 기준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은 결혼 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면서, 남들 같은 차를 못 타고, 남들 같은 집에 못 사는 데 좌절하고 절망하고 저주한다면, 여간해서는 좋은 삶을 살기 어렵다. 나에게, 또 우리에게 어울리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함께 그런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결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혼자 사는 게 세상 편해서 나는 영원히 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싶고, 변화하거나 바뀌는 게 싫고, 상대가 일방적으로 나의 결핍만을 채워주길 바라며, 상대와 함께 두 사람 만의 삶의 가치 기준을 만들어갈 생각이 없으며, 그저 내 안의 절대적인 기준을 영원히 지키거나, 타인들의 비교 기준에만 평생 휘둘리며 살아가고 싶다면, 결혼이란 상당히 곤란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잘고른 상품이어도 결국 내 손 안에서 녹슬고 쓸모 없는 중고품으로 전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