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모든 사랑에는 이 질문이 따라다닌다. 나는 이 말이야말로 사랑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항상 상대방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혹은 내가 이 사랑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말이다.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매일 연락을 안 할 수가 있어? 어떻게 기념일에 이런 선물을 줄 수가 있어? 어떻게 나한테 말도 없이 여행을 떠날 수가 있어? 어떻게 내가 아는 다른 이성과 술을 마실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어? 이 모든 질문의 핵심은 같다. 사랑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눈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감정이라고 말해지지만, 사실은 아니다. 사랑은 나와 상대방 사이에 '규칙'을 부여하는 행위다. 사랑은 나와 당신이 따라야 하는 당위, 규칙, 법칙, 즉 '관념'을 부여하는 일이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 이상으로 바로 그 규칙에 대한 정념을 의미한다. 규칙을 위반한 상대방은 용서받을 수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아니라 규칙이다.
내가 믿는 사랑의 대규칙을 상대방이 어기면, 상대방은 나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한다. 예를 들어, 양다리를 걸친다든지, 나 몰래 이성이랑 술을 마신다든지, 폭력을 휘두른다든지 하는 것들이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사랑의 규칙들'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 이런 건 사랑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 사랑에 대한 정념은 규칙에 대한 정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중에 어마어마한 분노나 증오를 느낀다면, 이 또한 거의 반드시 '관념적 규칙'과 관련되어 있다. 사랑은 때로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규칙 준수에 미쳐버린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들이다. 감히 나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나더니 죽여버릴 거야, 라는 머릿속의 규칙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상대를 죽이러 간다. 사랑은 규칙에 미치는 행위이다. 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감정들을 만난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 인간이 사실 '관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한 평생 자기만의 관념에 사로잡혀 산다. 때로는 자기만의 정의라는 관념에 목숨을 걸고, 자기와 다른 정의관을 가진 이들을 죽일 만큼 미워한다. 관념에 사로잡혀 온갖 극단적인 혐오, 증오, 학살을 행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게 사랑과 닮아 있다. 관념에 미쳐버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좋은 삶, 좋은 관계,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에는 그런 관념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가 핵심이다. 내 삶에 좋은 관념을 갖고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살 것인가가 좋은 삶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때로는 이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삶을, 세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기쁨을 주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 삶을 진정으로 좋은 것으로 만드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인간은 관념 때문에 죽고, 관념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살아난다. 관념이야말로 한 인간을, 한 인생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