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참으로 귀중한 존재 중 하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나에게 의미있는 비판을 해주는 사람들일 것이다. 대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 삶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듯하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쓰는 글, 내가 관계맺는 방식, 내가 살아가는 스타일에 대해 의미있는 비판들은 내 삶이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내 존재가 추해지고, 혐오스러워지고, 폭력적이 되는 걸 방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바로 옆자리에는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가 서있기도 하다. 그는 비판을 위한 비판, 비난을 위한 비난, 불만을 위한 불만을 내게 늘어놓는 존재이다. 이런 존재는 삶에 거의 아무런 이로움이 없다. 그들은 나의 의욕을 꺾어놓고, 내가 가던 꽤나 괜찮은 길의 방향을 틀어버리며, 내가 가진 한줌 자신감을 갉아먹고, 결국 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암시들을 심어놓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비판'과 '비판을 위한 비판'은 좀처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비판은 그 자체로 나를 자극하게 되고, 다른 걸 다 접어두고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동시에 그 말을 곱씹게 하면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럴 때, 과연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진정으로 더 나은 것을 위해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그저, 자기 자신의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다소 부정적인 성향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말이 둘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반드시 걸러내야 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기준이 있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의 기준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내게 관심을 갖고 응원을 하며 때로는 좋은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느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나에게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별로 서로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으며, 딱히 나에게 좋은 영향이랄 것을 준 적이 없었다면, 그의 비판은 흘려 듣는 게 나을 것이다. 그는 일종의 비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마음을 위한 '건수'를 잡은 것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에 넘쳐나는 비판, 비난, 부정, 신경증, 불만의 말들 중 상당수는 바로 그런 '건수 잡는' 말이기도 하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지 않는 사람의 공격과 비판은 대개 인생에서 걸러내야만 하는 독성과 같다. 반면, 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내뱉은 진심어린 충고만큼 새겨 들어야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떤 말들은 마음에 남아 삶이 되고, 어떤 말들은 그저 한 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 쪽 귀로 나가버리고 만다. 그런데 어떤 말을 남기고, 어떤 말을 흘려보낼 것인가를 때로는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고, 그런 선택이야말로 삶을 결정짓는 일들이 삶에서는 반드시 일어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