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Dec 01. 2022

그리운 건 다 사람 뿐이다.

Photo by Sylas Boesten on Unsplash


어쩌면 그리운 건 다 사람 뿐인 것 같다. 혼자 있던 시간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던 순간 같은 것들은 참 '좋았다'고 기억되긴 해도 간절하게 그립지는 않다. 오히려 홀로 있던 때가 많던 시절에도, 가만히 따져보면 그리운 건 그 풍경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가령, 혼자 강의 듣는 걸 좋아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리운 건 강의하던 사람의 눈빛, 목소리, 강의자와 수강생들과 맺으며 느꼈던 느슨한 유대감 같은 것이다. 


첫 직장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역시 그리운 건 사람들이다. 동료들과 맺고 있던 느슨하지만 명확했던 연대감, 함께 있다는 느낌, 언제든 서로를 불러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던 그런 당연함, 함께 한 시절과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감각, 그런 것이 그립다. 결코 똑같이는 다시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의 구성,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느낌, 때론 서로의 자유를 허락하며 무관심하던 시간들에도 모두 사람이 배여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혼자 노는 걸 참 좋아했다. 혼자만의 공상의 세계에 빠져 하루종일이라도 놀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리운 건 여동생이랑 강아지와 함께 달리던 시간들, 어머니의 노래와 이야기를 듣던 밤들, 아버지와 수영을 하던 순간들 같은 것이다. 종종 나를 바라보던 친구들의 눈빛이 그립기도 하다. 그 시절 사랑하던 세계의 느낌이란, 사실 사람의 느낌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마 다른 모든 일도 다르지 않지 않을까? 자아도취적인 기분이라는 건 그 순간 좋을 수는 있어도, 묘하게 그립지는 않다.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나누던 시간은 내가 빛나던 느낌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 나누던 눈빛, 웃음, 공감 같은 것 때문에 그립다. 그리고 아마도 좋은 삶이란, 그런 그리운 날들이 많은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차피 지금 또는 오늘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순간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을 돌이켜 봐도, 며칠이나 기억에 남았나 싶다. 내 것으로 남은 건 그리운 날들 뿐이다. 그리울 만큼 남은 어떤 정이나 사랑, 사람만이 내 안에 간직될 뿐이다. "좋은 녀석은 모두 죽는다." 포르코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녀석만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말하면, 기억에 남는 건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 뿐이다.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 뿐이다. 다 죽어버렸지만 죽지 않은 시간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나도 목표를 명확히 해야지,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유대감을 맺으며 살 것. 그것을 간과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만을 중심에 둔한 효율, 자유, 계산, 이런 것들은 두번째로 놓자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좋은 시절을 보내자, 배우고, 일하며, 꿈꾸면서 좋은 시절을 살자. 그것을 잊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전 17화 대화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