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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성공했던 플러팅

by 정지우

내가 아내한테 처음 사귈 때 했던 말이 아내 지인들 사이에서 화제였다고 한다. "일단, 그냥 3개월만 만나보세요. 이상한 사람이면 3개월 뒤에 헤어지면 되잖아요? 3개월만 만나보면,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될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슨 자신감인가 싶지만, 처음에 그것이 내가 했던 '플러팅'이라고 한다. 아무튼, 나의 그 확신에 아내는 만나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3개월은 3년이 되었고,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 아내와 나 사이에는 공통지인이랄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알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냥 어떤 사람인지 '느낌'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모험이었던 셈이다. 아마 그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3개월 별 거 아니니까, 만나보고 아니면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 때의 마음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는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행복한 시절을 선언하고, 행복하자고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아깝다. 겨울이 오고 있었고, 또 한 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당신을 놓치면,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평생 다시 그런 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 3개월이라도 만나보자! 후회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할 것이고, 좋은 사람임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연애라는 건 마음먹은대로 꼭 되는 건 아니어서,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사귀는 동안 티격태격도 많이 하고, 헤어지니 마니 울고불고 하면서 몇 달을 만나다가, 결혼까지 왔고, 결혼한 뒤에도 역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1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왔다. 그 때 내가 "나랑 3개월만 만나볼지 결정해요. 만날 거면, 오늘부터 우리는 3개월간 연인이고, 아니면 내일부터 보지 말기로 해요." 그건 뭐랄까, 낭만이나 멋짐이기 보다는 내 나름의 최선의 진심이었다. 사랑할 거면, 얼른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그건 사람에 따라서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썸을 타면서 서서히 알아가고 거의 호감이 완성되었다고 느낄 때부터 '사귀자'고 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건 도무지 잘 못하는 편이었다.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다룬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야오 역시 '남여의 밀당' 같은 건 도무지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만화에 '밀당' 같은 건 없다. 소년과 소녀는 만나자마자 호감을 쌓아서 곧 사랑해버린다. 밀당 없는 세계, 소년과 소녀가 만나면 사랑해버리는 세계가 '지브리의 세계'인 것이다.

어쩌면 나도 지브리에 너무 물든 청소년기를 보내서, 지브리를 너무 사랑한 청년기를 보내서,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일단, 사랑하기 시작하고, 사랑하면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고, 그러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라고 믿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랑의 방식도 있는 것이다. 일단 만나고, 시간을 쌓고, 순간들에 진심을 넣다보면, 정말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그대로 이어져버리는 세계관이라는 것도 있다. 나는 나의 꿈도, 나의 아이도, 나의 강아지도, 모두 그렇게 사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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