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K-관련 콘텐츠는 <오징어게임3>도 아니고, <폭싹 속았수다>도 아니다. 바로 <케이팝 데몬헌터스>다.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차트 1위를 기록한 건 물론이고, 수록곡 7개가 빌보드 핫100에 들었고, 앨범은 차트 2위에 올랐다. 이 기묘한 애니메이션은 그간 쌓여왔던 K-POP 신드롬의 가히 끝판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워낙 화제작이라, 나도 보았는데 솔직히 처음부터 오글거림을 참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뭐랄까, 한국 아이돌 남여 그룹이 각각 용사와 악으로 설정되어 서로 노래 부르며 싸운다는 설정이 도무지 소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와 흥행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끝까지 보고 말았다. 일단,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OST가 상당히 수준급이다.
보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 하나는 K-POP의 K-아이돌이 정말 전 세계 청소년들의 '워너비'로 여겨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시대 동경의 대상, 꿈의 장소, 전 세계 청소년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K-아이돌의 세계다. X세대가 막연히 일본과 도쿄를 꿈꾸었고, 밀레니얼 세대가 주로 미국을 꿈꾸었다면(나는 약간 고지식하게 유럽의 파리8대학이나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같은 걸 꿈꾸었다), 지금 세대는 K-아이돌을 꿈꾼다. 한국으로 치면, 동경의 대상이 자국에 있는 셈인데, 이들은 결국 세계로 진출한다는 점에서 묘한 면이 있긴 하다.
어쨌든 이 시대 아이들이 도달하고 싶어하는 그 K-아이돌의 세계, 그들이 살아가는 한국의 서울이 무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은 게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는 확실히 한강, 북촌, 남산타워, 잠실 등 서울의 명소들의 무슨 낙원의 꿈의 장소처럼 세련되게 재현되어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게 오글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들은 한국이야 인구문제로 멸망해가는 헬반도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지옥을 꿈-천국으로 묘사해뒀으니, 심지어 아이돌을 세계를 구하는 용사쯤으로 설정해뒀으니, 기묘한 간극이 '오글거림'이 될 법도 하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나는 막연히 유럽의 지성을 동경하고 알베르 카뮈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다른 곳'에 사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중고등학교 가서 강의를 해보면, 그런 꿈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 세대에도 별로 없긴 했다. 아무튼, 이 세대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꿈과 워너비와 동경하는 세계가 있는 것이고, 그 세계를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제대로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약간 달나라 구경하듯 우리 시대의 '정서'를 잘 보았다.
영화의 주제랄 것도 10, 20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주로 내면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며 자유로워지고, 해방되고, 사랑하며,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소와 절망만 가득한 게 우리 시대 현실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래도 또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꿈꾸고, 그에 열광하고 사랑해서 다행이다, 싶었달까.
본디 세상의 꿈들이란 여기저기를 옮겨다니기 마련이다. 미국, 유럽, 남미, 일본 등 동경의 대상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한국까지 왔다. 거기에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초창기 아이돌 기획사들의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되었다. 그러면, 이 동경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동경에 가까운 무엇으로 만들 노력도 이어지면 좋겠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야기했던, 전 세계를 물들이는 '문화국가'가 정말 대한민국이 되었다면, 그에 걸맞는 문화를 갖기 위해 노력하면 좋을 듯하다. 어쨌든, 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할 이들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 사진 출처 -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캡쳐 인용